오피니언 사설

차원 다른 북한의 무수단 위협에 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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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의 6자회담 차석 대표인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이 어제 ‘미니 6자회담’이라 불리는 제26차 동북아시아협력대화 세미나에서 “6자회담은 죽었다”고 천명한 것은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제 제재에도 불구, 핵 포기는 없다는 북한의 의지를 전 세계에 재확인한 것이다. 이는 북한이 다섯 차례의 실패를 딛고 23일 끝내 무수단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시험발사를 성공시킨 데 고무된 대응이기도 하다.

실제 무수단 미사일의 발사 성공은 한·미 동맹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 유사시 파견될 신속전개군이 주둔하고 있는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물론 B-2 스텔스 폭격기, B-52 장거리 전략 폭격기 등 미군 전략자산이 집결한 괌 앤더슨 기지가 사정권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전쟁 초기에 기선을 제압당할 위험이 있다. 또 미사일이 고도 1000㎞ 이상 상승 비행한 뒤 폭발 없이 낙탄이 됐다는 것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핵심 기술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밖에 핵 탑재 능력이 큰 IRBM을 이번 실험처럼 고각(高角)으로 발사해 400㎞ 지점을 타격할 경우 남한 지역에 마하 10이 넘는 엄청난 속도로 낙하하게 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는 말할 것도 없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로도 막아내기 힘들다. 게다가 원래 러시아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복제 조립한 무수단 미사일을 개량해 잠수함에 장착하는 단계에까지 이를 경우 그야말로 가공할 위협이 된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잠수함 발사가 아니더라도 상선으로 위장한 선박의 일반 컨테이너에 무수단 미사일을 적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정부와 군당국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북한의 능력을 끌어내리거나 과대 포장할 게 아니라 실제적이고 치명적인 위협에 대비해 실효성 있는 미사일방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사드 배치 논의와 아울러 북한이 미사일 발사 조짐을 보이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킬체인’과 탄도미사일을 종말단계에서 요격하는 KAMD의 실질적인 방어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북한의 위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국민의 안보 불감증만 키울 뿐이다.

무수단 미사일의 시험발사 성공은 핵보유국으로서 대외관계의 판을 새롭게 짜겠다는 북한의 전략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우리로서는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럴수록 북한의 발사실험이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인 만큼 국제사회의 공조를 더욱 확고히 해 북한이 핵 포기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야 한다.

아울러 압박만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북한과 중국 사이의 고위급 인사 교류가 다시 늘고 있는 데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訪中)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형국에서 압박 일변도의 우리 대북·외교전략이 한순간에 흔들리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제재와 함께 유연한 접근이라는 복합적인 대책을 검토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