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까지 부탁해, 연장전 ‘붉은 여왕’ 김세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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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빨간 바지를 입고 나온 김세영이 연장전 끝에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김세영은 이날 승리로 연장전 3전 전승을 기록했다. 우승을 확정지은 뒤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는 김세영. [그랜드래피즈 AP=뉴시스]

“평소엔 산만한데 골프 클럽만 잡으면 눈빛이 변한다.”

LPGA 마이어 클래식 우승
빨간바지 입고 마지막 날 또 역전
3차례 연장승부 모두 이긴 강심장
올림픽 대표팀 새 에이스로 떠올라

김세영(23·미래에셋)의 아버지 김정일(54) 씨가 딸을 두고 한 말이다. 연장전 같은 긴박한 상황이 되면 김세영의 눈빛은 더욱 매서워진다.

김세영은 20일 미국 미시건주 그랜드래피즈 블라이더필드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마이어 클래식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했다. 합계 17언더파로 카를로타 시간다(26·스페인)와 동타를 이룬 김세영은 연장 첫 홀에서 버디를 낚아 시간다를 제치고 시즌 2승째를 챙겼다. 우승상금은 30만 달러(약 3억5000만원).

김세영은 마지막 날 더욱 강해진다. 최종 라운드에 빨간 바지를 입고 나와 역전승을 거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연장 승부에도 유달리 강하다. 김세영은 이제까지 3차례 연장승부에서 무조건 드라이버를 잡았다. 이기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고는 연장 첫 홀에서 버디 또는 이글을 잡아내 승부를 마무리했다.

이날도 김세영은 연장전에서 드라이버로 티샷을 했다. 그리고는 핀까지 109m를 남겨놓고 50도 웨지로 샷을 했다. 그린 앞에 떨어뜨린 뒤 굴려서 핀에 붙이겠다는 전략이었다. 그의 계산대로 90m 지점에 떨어진 공은 그린 위를 굴러 핀 1m 옆에 멈춰섰다. 김세영은 가볍게 버디를 잡아내며 보기를 범한 시간다를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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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5승 중 3승을 연장전에서 챙긴 김세영은 ‘연장전의 여왕’으로 불리게 됐다. LPGA투어에서 3승 이상을 거둔 선수 중 연장전 승률 100%를 기록 중인 선수는 박세리(6전 6승), 미셸 맥건(4전 4승)과 김세영 등 3명 밖에 되지 않는다.

아버지 김정일 씨는 “세영이는 긴장을 즐긴다. 갤러리가 많으면 더 좋아한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홀에선 드라이버로 승부수를 띄운다”고 말했다.

김세영은 이날 리더보드를 보지 않고 18번홀 경기를 마친 뒤 미리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마지막 홀 보기를 하고도 3위 전인지(22·하이트진로)에 2타 앞선 김세영은 우승한 줄 알고 손 키스를 하며 세리머니를 했다.

김세영은 “진행 요원이 그린으로 안내해서 시상대로 가는 줄 알았다. 시간다가 티박스에서 왜 몸을 풀고 있는지 의아했다. 연장전을 치러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시간다와 동타인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생각지도 못한 연장전이었지만 김세영은 강철 멘털을 뽐내며 우승했다. 지난 3월 JTBC 파운더스컵 이후 3개월 만에 2승째를 거둔 김세영은 세계랭킹 5위를 유지하며 사실상 리우 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었다.

마지막날 최장타자인 렉시 톰슨(21·미국)과 동반 라운드를 펼친 김세영은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 296.5야드로 톰슨의 평균거리(293.5야드)를 3야드나 앞질렀다. 그린 적중 시 퍼트 수도 1.62개로 가장 좋았다. 김세영은 라운드당 평균 버디 수도 4.42개로 투어 1위다. LPGA투어에서 가장 버디를 많이 잡는 선수라는 뜻이다.

손가락 부상을 당한 박인비(28·KB금융)의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김세영은 이날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여자골프 에이스로 떠올랐다.

김세영은 이번 대회에서 세계 1위 리디아 고와 4위 톰슨(14언더파 공동 4위) 등을 제치고 우승했다. 브라질 올림픽 코스 인근에 일찌감치 숙소를 잡아뒀다는 김세영은 “112년 만에 다시 열리는 올림픽 골프에서 꼭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고 말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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