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파일] '고수익 보장' 물품 강매…취준생 청년 울린 다단계 업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혹시 몇 해 전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거마대학생' 사건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거마대학생은 서울 거여동·마천동 일대에서 합숙하며 불법 다단계 판매 일을 하던 대학생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2011년 중앙일보가 처음 이 내용을 보도(본지 2011년 9월20일 <거마대학생 5000명 '슬픈 동거'>)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2, 제3의 '거마대학생'들은 계속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불법 다단계 행각을 벌인 혐의(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정모(35)씨를 구속하고 판매원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0일 밝혔습니다.

과거 유명 다단계 업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던 정씨는 취업을 준비 중인 20대 초반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서울 마포구 신촌에 사무실을 임대해 이들을 판매원으로 모집했습니다.

정씨 일당은 주로 지인이나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피해자들을 모아 신촌 일대 커피숍으로 데려갔습니다. 이후 "너만 잘하면 월 500만~700만원 이상을 벌 수 있다"며 이들을 다단계 사업에 끌어들였습니다. 여기에 넘어간 학생들에게는 화장품, 건강식품 등 600만원 상당의 다단계 판매 물품을 구입하게 했습니다. 판매한 물건 가격의 6%를 수당으로 받고 공급가와 판매가의 차액도 가질 수 있다면서 말이죠. 돈이 없다고 하면 대출을 알선하기까지 했습니다.

피해자들은 뒤늦게 불법 다단계임을 알고 물건을 반품하려 했지만 정씨 측은 "이미 상품을 개봉해서 안 된다" 등의 핑계를 대며 거부했습니다. 반품도 안 되고 대출까지 받은 상황서 피해자들은 자신의 지인들을 유혹해 또 다른 피해자로 만들기도 했죠. 그래야 그나마 수당이 떨어졌으니까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전형적인 불법 다단계 수법입니다.

경찰은 정씨 일당의 다단계 업체를 압수수색해 올해 3~6월 장부를 확보했습니다. 이 기간 반품을 신청한 피해자만 180여명이었다고 합니다. 압수수색 당시 대학생 수십 여명이 사무실 안에 있었는데 이들은 '왜 우리 사업을 방해하려 하느냐'며 되려 경찰을 막아섰다고 경찰 측은 전했습니다. 사무실 곳곳에는 '올해는 돈 많이 벌어서 평지로 이사가자''5월 전에 팀장 달기' 등 학생들의 소소한 소망들이 적혀 있어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하네요. 경찰은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① 거마 대학생 5000명 '슬픈 동거'
② 부모가 와도 “난 안 간다” 그곳은 사이비 종교였다



경찰 관계자는 "사회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은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속임수에 넘어가 불법 다단계 유혹에 빠지기 쉽다"며 청년들의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