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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구·화장품 등 틈새시장 파고들어 아이돌과 경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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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10면

한국에서 처음으로 ‘유튜브 스타’로 불린 인물은 기타리스트 정성하(20)씨다. 유튜브가 구글에 막 인수된 2006년, 제이더블유씨프리(jwcfree)라는 닉네임의 열 살 소년이 완벽한 핑거스타일 주법으로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 주제곡을 연주해 해외에서 먼저 화제가 됐다. 전문 음악인으로 성장해 지난해 5집 앨범을 낸 그는 두드러진 국내 활동은 없지만 유튜브 생태계 내에서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구독자는 395만4214명, 한국 기반 유튜브 채널 중 5위(세계 328위)를 기록하고 있다. 누적 조회수는 12억 회 가까이 된다. 자작곡뿐만 아니라 세계인에게 익숙한 곡을 자신의 스타일로 편곡해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꾸준함이 인기의 비결이다.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플랫폼의 발전으로 1인 창작자의 진입 장벽이 확실히 낮아졌다. 단발성이던 과거 사용자제작콘텐트(UCC)와는 달리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정해 꾸준히 콘텐트를 올리는 제작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정씨처럼 별도의 활동이 전혀 없는 연주자가 10년 동안 채널을 유지하며 여전히 하루 1000~1700명(6월 4~17일 기준)씩 구독자를 더해가는 플랫폼은 기존 음반산업 시스템 아래에선 상상하기 힘들었다.


한국 유튜브 채널 중 여전히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각종 한류 콘텐트(주로 아이돌 채널) 비중이 높다. SM엔터테인먼트를 필두로 한 3대 연예기획사, 방송사 콘텐트의 지배력도 무시할 수 없다. 1~12위 채널 중 정씨 외엔 모두 기존의 강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1인 제작자 콘텐트 인기 분야는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미국·유럽에선 1인 코미디 채널, 웃긴 동영상 모음, 각종 도전 동영상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한국에선 특히 ‘아이들이 보는 동영상’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는 유아·어린이(토이푸딩·팜팜·토이몬스터·뽀로로 등) 콘텐트가 대형 기획사와 방송국과 경쟁할 수 있는 1인 창작의 틈새시장으로 꼽힌다. 당장 육아를 해야 하는 부모에게 도움이 돼 많이 보기도 하지만 미래의 소비자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라 제휴와 협업 기회가 많다. 특히 장난감 포장을 뜯으며 소개하는 장난감 언박싱(Unboxing)에 아이들이 열광한다. 완구회사의 러브콜이 잦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투자 기회도 많다. 이 분야에서 1인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토이몬스터 김승민씨는 “말도 못하는 아기들이 비디오를 본 뒤 (자판을 마구 눌러) 외계어 같은 댓글을 남기고 ‘좋아요’ 혹은 ‘싫어요’를 눌러 의사를 표시한다”며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사고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캐리소프트는 최근 NHN엔터테인먼트로부터 44억원의 투자를 받으면서 단숨에 주목받는 벤처로 떠올랐다. 채널 운영자인 캐리(강혜진)는 KBS ‘TV유치원’ 진행자로 발탁돼 지상파로 진출했다.


일부선 “광고·협찬 등 과도해질 수도” 우려1인 제작자 활동 영역이 확대되면서 이들을 모아 콘텐트 제작을 돕고 관리하는 멀티채널네트워크(MCN)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선 CJ E&M이 2013년 7월 처음으로 MCN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는 ‘다이아TV’로 회사명을 바꾸고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현재 800명의 팀과 계약을 맺었는데, 유명 창작자가 다수 포함돼 있어 ‘싹쓸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도서관(나동현 )·씬님(박수혜)·회사원A(최서희 )·영국남자(조슈아 캐롯)·소프(박준하) 등이 다이아TV 소속이다.


뷰티 관련 창작자들도 상한가다. 구독자나 조회수는 육아·게임보다 낮지만 당장의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제품이기 때문이다. 1인 제작자에서 중소기업 규모의 회사를 키우는 사례도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뷰티 동영상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씬님은 가족과 함께 회사를 차려 운영하고 있다. ‘원 브랜드 메이크업’ 동영상, 특정 뷰티 상품의 코믹 광고를 직접 만들어 채널에 올린다. 최근엔 자신의 활동명에서 따온 ‘씬스틸러’라는 색조 라인을 내놓았다.


회사원A도 미샤와 협업 제품을 내고 이를 다양한 채널에서 홍보하고 있다. 2008년 뷰티 블로거로 시작해 미국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메이크업으로 유명해진 포니(박혜민)는 화장품 스타트업 ‘아이엠미미’와 자신의 이름을 건 ‘포니 미미박스’ 라인을 출시했다. 포니의 경우 자신의 화장법을 적용해볼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작업에도 참여했다.


상대적으로 침체된 게임 관련 1인 크리에이터들이 주축이 된 트레져헌터는 차별화 전략을 앞세웠다. 아프리카TV 시절부터 유명했던 양띵(양지영)·악어(진동민) 등이 주축이 돼 운영하는 독립 MCN을 표방한다. 네이버에 인터넷 드라마를 공급하고 모바일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다.


MCN 등장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소속사의 개입으로 1인 제작자의 가장 큰 강점인 창의력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과도한 광고, 밝히지 않은 협찬은 그동안에도 문제가 됐지만 더욱 시스템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같은 MCN 소속 제작자들이 서로를 밀어주거나 특정 방송에 중복 출연하는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월 1억원 이상 수입 올리는 경우도동영상 플랫폼 주도권을 둘러싼 거대 기업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하루 사용자가 10억 명에 달하는 유튜브가 지배적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미 대부분의 창작자는 하나의 플랫폼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유튜브 진출이 막혀 있는 중국에서는 소속 MCN을 통해 현지 업체와 별도의 파트너십을 맺는 전략을 펼친다. 다이아TV는 중국 유큐·투도우에 콘텐트를 제공하고 있고 중국 현지에서 1인 크리에이터 육성에도 열심이다.


현재 유튜브 채널 콘텐트 파트너로 활동하는 창작자는 약 8000명이다. 유튜브의 모기업인 구글은 이들과 어떤 기준으로 광고 수익을 나누는지는 비밀에 부치고 있다. 구글코리아 측은 “어떤 경우에도 창작자가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또 “연간 ‘6자리 수’(10만~99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파트너가 매년 50%씩 증가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경우 톱클래스로 분류되는 창작자들은 ‘월 5000만~1억원+α’의 수입을 올린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 모바일 콘텐트 산업의 시장 규모는 정확한 측정이 어렵지만, 광고 시장만 계산했을 때 2017년 약 95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유튜브에 대응한 페이스북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페이스북은 올 4월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고 가상현실(VR), 360도 동영상 서비스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미지와 관계망 형성 중심이던 페이스북의 동영상 조회수는 지난 1년 새 연간 10억 회에서 80억 회로 8배가 뛰었다. 니콜라 멘델손 페이스북 유럽·중동·아프리카 총괄 부사장은 “앞으로 5년 이내에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글자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결국 핵심 창작자를 붙잡기 위한 정보기술(IT) 공룡들의 플랫폼 싸움은 향후 몇 년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유튜브는 일찌감치 제작자 네트워크 파티, 저작권 보호 서비스, 동영상 제작 스튜디오 지원, 각종 툴(도구) 개발 등을 핵심 창작자들에게 당근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에선 1인 인터넷 방송의 선두주자로 ‘별풍선 수익 모델’을 고안해 비판과 찬사를 함께 받은 아프리카TV가 MCN 사업에 뛰어들었다. 포털시대 이후를 고민 중인 네이버, 실질적 수익 모델이 간절한 카카오까지 동영상 플랫폼 강화 전략을 고민 중이다. 지상파 방송도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MBC는 다음TV팟과 협력해 ‘마이리틀텔레비전’을 정규 편성했고, KBS도 ‘예티 스튜디오’를 만들어 파일럿 테스트를 시도하기도 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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