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안정목표의 후퇴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3조8천억원의 내년예산안은 규모에서 볼때 양극재정이나 경기조절용이라는 명분에 비하면 내용에서는 소극적이다. 이같은 량과 질의 격차는 원천적으로는 재원의 한계와 안정기조의 전면후퇴불가라는 양면의 제약에서 비롯된 것이라 굳이 탓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규모면에서 올해 본예산보다 12.5%, 추경포함대비 10.2%나 늘려 잡은 주된 배경이 경기부양에 있다면 세출구성도 좀더 경기효과가 큰 부문의 중점투자가 필요하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재정지출의 핵과는 원천적으로 중립적인 것이 바탕직하나 이는 평상시의 일반론일 뿐이며 지금의 경제는 평상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안팎의 난제들이 겹쳐있는 상황이다. 수출에 너무 크게 의존해온 국내경제가 지금의 경기부진을 탈피하려면 바깥사정으로 보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는 내수의 보조엔진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12.5%의 팽창을 무릅쓴 내년예산이 과연 이 보조엔진의 능력을 충분히 가동시킬 수 있을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재정지출의 경제적 효과로 볼때 내년의 세출은 5천억원의 공공사업증가 자체가 경기부양효과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세출구성으로 볼때 그 핵과는 매우 분산적 일시적일 수도 있다. 내수경기의 진작은 우선 고용효과가 크기도 해야지만 안정적 고용확대를 수반해야 의미가 있다.
이점에서 보면 재정지출이 고용안정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에 너무 분산된 감이 없지않다. 경제적 파급효과에서 불때 지방의 군소 토목사업들은 노임살포와 일시적 고용증대에는 유핵하나 소득의 승수적 파급도는 낮은 편이다. 여당의 공약사업이 반영된 탓인지 지방재정교부금이 너무 많이 늘어나 이같은 재정지출의 고용 소득효과는 그만큼 낮아졌다.
이밖에도 사법·경찰부문이 11.7%, 방위비 12.6%, 영세민 보호등의 사회개발비가 15.6%씩 각각 늘어나 예산의 평균증가율을 모두 웃돌고 있다. 이런 지출들은 아무래도 생산적 고용보다는 소비적 성격이 높은 편이다.
반면 안정고용효과가 가장 높은 경제개발부문의 증가율은 6.2%에 불과, 평균증가율을 훨씬 밑돌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고려할 때 기왕 확대재정을 채택한 이상 그효과 분석면에서 재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총량면으로 볼때 내년예산은 세인에서 문제가 생길 소지도 안고 있다. 올해 성장율이 5∼5.5%에 머물것이 확실하고 내년성장도 안팎의 여러 사정으로 미루어 6%선을 크게 넘어서지 않을 전망임에 비추어 12%가까운 조세수입증가는 낙관하기 어렵다고 과거처럼 물가상승에 따른 자연증수도 많지 않을 것이므로 세입확보에 무리가 따를 소지가 많다. 이점을 유의해서 경기진작과 조세수입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재정정책의 측면에서 내년예산은 통합재정수지의 균형이라는 큰줄거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같은 일탈은 일시적인 것으로 고쳐야 하고 재정의 장기안정 목표는 포기되어서는 안될 과제임을 인식해야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