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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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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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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어지러울 글일 수 있습니다. 어지러운 상황이어서입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시로는 똑똑한 결정이었을 겁니다. 1975년의 유사한 선례가 있으니 할 만도 했습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국민투표 카드 말입니다. 반EU 바람이 거세던 2013년 그는 이 카드로 보수당의 분열을 막았고 2015년 재집권도 했습니다. 용한 방책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식언(食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럴 줄 알았다면 제안했고, 또 제안했더라도 약속을 지켰을까요? 유능한 민주주의 지도자라면 역설적으로 대중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진정 유능하고 옳았던 걸까요?

영국은 10년 노력 끝에 EU, 엄밀하겐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습니다. 73년입니다. 이후 최고의 성적을 냅니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심지어 미국보다 더 성장합니다. EU 단일시장의 진정한 승자입니다. 이민 급증은 성공의 부산물입니다. 돈이 있어 사람이 몰린 겁니다. 매력적이나 엉터리인 포퓰리스트들은 이걸 외면합니다. 그러곤 이민·국가정체성·주권이란 추상명사로 가슴에 불을 지릅니다. 당파적 심장들은 거세게 뜁니다. 우리의 머리는 늘 가슴에 자리를 내주고야 마는 걸까요?

세계화에 대한 불만이 거셉니다. 혜택의 불평등 배분 탓입니다. 기성체제를 조롱하고 거부합니다. 정당만 대상인 건 아닙니다. 영국은행(BOE)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의 말에도 딴청입니다. 늘 다른 얘기를 하기 일쑤인 경제학자들이 모처럼 “브렉시트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를 내도 무시됩니다.

부유한 국가의 하위중간계층들이 진원지입니다. 살 만하나 혜택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들이랄 수 있습니다. 이네들에겐 그래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란 구호는 공허합니다. 대신 가치입니다. 하지만 그게 파괴적이며 분열적 속성의 고립주의·민족주의적이어야만 하는 걸까요? 부수는 데 능한 이들에게 새 질서를 만들어낼 힘까지 있을까요?

“변화하지 않는 게 필요하지 않을 때 변화하지 않는 게 필요하다”던 보수주의 나라인 영국마저 유럽을 떠날 정도의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닮은꼴’인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는 미친 결정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이 정도로 광풍인가요? 성숙한 사회의 자멸적 선택을 목도하고 있는 걸까요?

결과는 곧 알게 됩니다. 답까진 아닙니다. 우리는 진정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요?

고 정 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