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의심되면 은행창구에 물어보세요

중앙일보

입력

지난 14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의 한 농협은행 창구. A씨(67·여)가 불안한 눈빛으로 다가와 "통장 안에 있는 돈을 모두 찾겠다"고 했다. 그의 통장 안에는 3800만원이 들어있었다. 담당 직원은 "왜 갑자기 돈을 모두 찾느냐?"고 물었다. 대답을 주저하는 A씨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느낀 직원은 지점장에게 보고하고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에게 A씨가 털어놓은 출금 이유는 이랬다.

"오전에 금융감독원 직원이라고 전화가 왔다. 누군가 내 명의로 대출을 받으려고 한다고 통장에 있는 돈을 모두 현금으로 인출하라고 했다. 금감원에서 대신 맡아 주겠다고 직원이 찾아오면 건네라고 했다"

보이스피싱 범죄였다. A씨 말고도 이날 하루만 B씨(88·여)와 C씨(84)가 각각 은행에서 5000만원과 1900만원을 찾으려다 은행 직원의 신고로 피해를 면했다.

인천지방경찰청이 지난해 6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금융기관과의 업무협약 사업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인천지역 금융기관 11곳과 협약을 맺고 보이스피싱 범죄를 예방하는 사업이다. 각 은행은 수상한 점이 있거나 고액을 인출하는 고객을 112에 신고한다. 이를 위해 경찰은 은행 직원들이 고객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는지 파악할 수 있는 예방 체크리스트를 각 금융기관에 배포했다. 또 은행 별로 담당 경찰관을 지정해 은행 직원과 일반 시민 등을 상대로 정기적으로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이 도입된 지난해에만 56건(13억5000만원)의 보이스피싱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거뒀다. 올해 1월부터 14일 현재까지도 38건의 범죄를 차단해 9억8489만원을 지켰다. 이 협약은 경찰청 우수사례로 선정돼 전국으로 확대·시행되고 있다고 인천경찰청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대포통장 단속을 강화하면서 최근에는 금융감독원이나 검찰, 경찰 등을 사칭해 현금을 찾으라고 한 뒤 직접 돈을 받아가거나 집 열쇠, 비밀번호를 알아내 가져가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늘고 있다"며 "예금을 보호해 준다거나 대출신용도를 올려준다며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선입금을 달라는 것도 신종 대출사기니 주의해 달라"고 말했다.

인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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