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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돼지갈비에 고추냉이 소스, 어떤 맛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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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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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식탁에 오르는 식재료가 어떻게 변화해 왔고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20년 현장 전문가의 시선으로 점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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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냉이는 잎(왼쪽)과 줄기 모두 먹는다. 장아찌로 먹기도 하고 생으로 먹기도 한다.

우리나라 작물이면서도 ‘와사비’라는 일본어로 더 많이 불리는 향신료가 있다. ‘고추냉이’다. 흔히 일본이 원산지라고 생각하지만 국내에서도 자생하는 식물이다.

한국의 명품 식재료 ⑩ 우리 향신료 ‘고추냉이

필자는 고추냉이 농장을 2004년에 처음 가 봤다. 농장은 산과 물이 좋은 전북 임실에 위치했다. 한쪽엔 생고추냉이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공장 안에 들어서자 공기가 온통 고추냉이 향으로 가득 찼다. 눈도 쓰리고 콧속을 자극하는 바람에 연신 재채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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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에 간 고추냉이 뿌리.

고추냉이가 매운맛을 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매운 향을 낸다. 고추냉이 뿌리를 강판에 갈 때 ‘시니그린’이라는 물질이 효소에 의해 파괴되면서 매운 향이 난다. 맵다는 점은 같지만 자극 방식에서 고추와 고추냉이는 다르다. 고춧가루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은 혀의 통증을 유발해 매운맛을 느끼도록 한다. 반면 고추냉이는 향으로 코를 자극해 맵다고 느끼게 한다. 고추냉이에 있는 시니그린은 다른 식물에도 있는데 겨자·갓·무 등이다. 시니그린 함량에 따라 매운맛의 강도가 각각 다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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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냉이 꽃

우리나라에 고추냉이를 재배하는 곳이 임실뿐인 줄 알고 있었는데 강원도 철원의 민간인 통제선(이하 민통선) 안에도 고추냉이 농장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다. 농장이 있는 마을 이름이 ‘샘통’이다. 샘물이 어디서나 나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고추냉이는 물 맑은 곳에서 잘 자란다. 밭에서 재배하기도 하지만 이는 잎과 줄기만을 얻기 위함이다. 국내에서 고추냉이 대량 재배의 기원은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 식생활이 변하면서 생선회에 고추냉이를 곁들여 먹는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다. 농촌진흥청에서 특수작물로 물 좋은 곳에 시험 재배를 했지만 상업화에 성공한 곳이 없었다.

철원 ‘샘통 물고추냉이농원’ 박정원 대표는 98년 고추냉이 재배를 시작했고 2000년 상업적 재배에 성공했다. 고추냉이는 재배기간이 여느 작물보다 길다. 채소는 통상 몇 개월이면 씨를 뿌리고 수확할 수 있지만 고추냉이는 15개월이나 걸린다. 제대로 된 고추냉이를 수확하려면 18개월은 돼야 한다. 재배하는 동안 물의 온도가 변할 경우 ‘무근병(겉은 멀쩡해도 속이 텅 비는 증상)’이 온다. 90년대 후반 철원에서 고추냉이를 생산하던 농장이 세 군데였는데 그중 한 농장에서 고추냉이 뿌리가 무근병에 걸린 줄도 모르고 수출했다가 문제가 생겼다. 그 여파로 두 농장은 생산을 포기했지만 샘통 농원은 살아남았다. 그 비결은 샘통 농원이 사용하는 지하수에 있다. 여름에는 12도, 겨울에는 13도로 연중 온도 변화가 적어 좋은 고추냉이가 자라는 데 이상적인 조건이다.

고추냉이는 뿌리만 먹는 것이 아니라 줄기·잎 모두를 먹는다. 줄기나 잎은 간장에 절임을 해 장아찌로 먹기도 하고 생으로 먹기도 한다. 생으로나 간장 장아찌로 먹을 경우 고기하고도 잘 어울린다. 고깃집의 상추나 명이나물처럼 고추냉이 잎은 상추 대신 쌈용 채소로 좋다. 고기를 싸서 먹을 때 잎 부분은 살짝 매운 향이 난다. 잎 끝부분의 줄기 쪽을 씹으면 입보다 조금 더 강한 매운 향이 나면서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해 준다. 줄기는 생으로 아작아작 씹으면 매운 향과 함께 청량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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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냉이 잎과 줄기를 믹서에 곱게 갈아 돼지갈비 양념에 섞어 숙성하면 돼지 잡내가 사라진다. [사진 김진영]

고추냉이가 생산되는 철원에는 이를 이용해 돼지갈비 양념을 하는 곳도 있다. 고추냉이 잎과 줄기를 믹서에 곱게 갈아 갈비 양념에 섞어 하룻밤 숙성을 한 다음 갈비를 낸다. 매운 향이 있을 듯싶지만 막상 맛을 보면 고추냉이 향은 사라지고 잡내 없는 돼지갈비 맛만 남는다. 고추냉이 뿌리는 생선회는 물론 기름진 고기와도 잘 어울린다.

서울 종로의 ‘한육감’에서는 고기를 먹을 때 소금 외에 머스터드·고추냉이를 함께 내는데 소금을 살짝 찍고 고추냉이를 조금 올려 먹을 수 있게 한다. 구운 고기에 고추냉이를 올리면 매운 향이 콧속을 자극하면서 날아가고 고추냉이의 단맛이 고기 맛을 더 풍부하게 한다.

시판되고 있는 고추냉이 맛은 오롯이 고추냉이 맛이 아니다. 고급 횟집이나 일식에서는 생고추냉이를 내지만 보통은 분말을 물에 개서 낸다. 짙은 녹색의 고추냉이를 종지 한쪽에 놓고 간장을 부어서 나온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생고추냉이는 옅은 연두색이다. 고추냉이 분말을 만들 때 고추냉이만으로는 만들지 않는다. 고추냉이 분말 조금에 겨자, 겨자 향미유가 들어간다. 겨자를 넣는 이유는 가격 문제도 있지만 향의 지속성 때문이다. 거기에 매운맛을 내기 위해 고추에서 추출한 올레오레진캡시컴을 넣는다. 생고추냉이로 유통되는 것에는 매운맛을 더하기 위해 서양 겨자 무를 혼합한 것도 있다. 겨자의 향과 올레오레진캡시컴의 매운맛으로 인해 더욱 맵게 느껴진다. 실상은 매운맛이 아닌 매운 향을 가졌지만 가공할 때 첨가되는 몇 가지 물질 때문에 매운 자극이 지속된다. 실제로 고추냉이 뿌리를 강판에 갈면 매운 향이 강하게 나다가 금세 사그라진다. 몇 분 후 고추냉이 간 것을 먹으면 향이 사라지고 옅은 단맛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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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냉이를 올린 참치회. [사진 김진영]

고추냉이는 통상 회를 먹을 때 이외엔 기껏해야 어묵이나 생선구이를 즐길 때 조금씩 간장에 타서 곁들인다. 하지만 좀 다르게 먹는 방법도 있다. 구운 고기에 고추냉이를 얹어 먹어도 좋고 줄기를 먹기 좋게 잘라 함께 먹어도 좋다. 쉽게, 맛있게 먹는 방법 중엔 라면도 있다. 라면을 끓일 때 고추냉이를 넣으면 향이 날아가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지만 끓인 후 면을 먹을 때 조금씩 고추냉이를 곁들이면 기름진 라면의 맛을 순화해 준다. 특히 식은 국물에 밥을 말아 먹을 때 고추냉이를 조금 넣으면 국물이 깔끔해져 맛있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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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식재료 연구가
‘여행자의 식탁’ 대표

고추냉이를 ‘와사비’라 부르다 보니 국내에서 고추냉이가 생산되고 있음을 아는 이가 드물다. 게다가 횟집에서 내주는, 수퍼에서 파는 분말 제품이 고추냉이의 전부라 생각하기 일쑤다. 고추냉이는 뿌리뿐 아니라 잎과 줄기에도 매운 향이 숨어 있는 식물이다. 최근에는 잎·줄기를 이용한 장아찌와 고추장도 나오고 있지만 가공 및 활용이 초보 단계다.

일본 출장길에 우유로 만든 푸딩에 성게 알을 올리고 그 위에 다시 ‘와사비’를 올린 음식을 맛봤다. 고추냉이의 톡 쏘는 향과 개운한 맛을 활용한 요리법이 일본처럼 다양하게 개발됐으면 한다.

음식상식 | 겨자는 찬물에 개워놔야 매운맛 제대로 즐겨

고추는 캡사이신, 후추는 차비신, 겨자는 시니그린 등 종류에 따라 매운맛의 강도가 달라진다. 이 가운데 물을 섞는 겨자는 찬물에 미리 개어 놔야 제대로 된 매운맛을 즐길 수 있다. 뜨거운 물에 겨잣가루를 갤 경우 향은 날아가고 쓴맛이 나 제대로 된 겨자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진영 식재료 연구가 ‘여행자의 식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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