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오노 요코의 깨진 항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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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달 21일 예정된 시간을 50분이나 넘긴 오후 6시 직전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1933~)는 서울 중심가 삼성생명 국제회의장에 마련된 '관객과의 대화'를 매듭하면서 멀쩡한 도자기 하나를 들고 나와 무대 한복판에 놓았다.

잠시 무대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돌아온 그녀는 손에 든 담요 속의 물건을 도자기 옆에 풀었다. 깨진 항아리 조각이 쏟아졌다.

오노 요코의 마지막 멘트가 이어졌다. "이 대화가 끝난 후 이 깨진 그릇 한 조각씩 나눠 들고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10년쯤 세월이 흐른 뒤 어디선가 만나 파편들을 맞춰봅시다."

청중은 앞다퉈 무대 쪽으로 다가가 그 조각들을 줍기 바빴다. 진행자의 말이 흘러나왔다."손을 다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그 짧은 혼란의 틈새로 그녀는 소리없이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순간 두개의 사건이 스쳐지나갔다. 하나는 1969년 3월 비틀스의 멤버 존 레넌(1940~80)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신혼여행 중 힐튼호텔에서 벌인 '평화를 위한 침대 시위(bed-in)', 다른 하나는 70년대 초 미국 뉴욕의 록 전위 예술가 프랭크 자파의 콘서트를 찾은 오노 요코가 허리띠 대신 중무장한 탄띠를 장신구로 두른 채 무대에 올라 즉석에서 펼친 정치성 강한 퍼포먼스(당시 용어로는 '해프닝')였다.

이날 서울의 관객들이 정적(靜的)이면서 여운이 강한 오노 요코의 '평화 퍼포먼스'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성한 도자기는 평화를, 깨진 항아리는 전쟁을 상징하는 듯했다.

그리고 10년 뒤 반드시 평화로워야 한다는 어렴풋한 기약까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모든 것을 백지화해버리는 특유의 스타일로 다들 조바심을 내던 터였다.

하지만 오노 요코는 서울 무대에서 도발적 성향을 유감없이 내보였다. 어쩌면 관객과 대화의 장 전체가 잘 짜인 행위예술 같았는데, 그것은 마치 그녀 스스로 어느 앨범에 "혼자 꾸는 꿈은 한낱 꿈에 불과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썼던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몇개 질문에 스캣(무의미한 음절의 즉흥 노래)으로 답하는 것은 물론 때론 무대 위를 걷거나 앉고 그러다 갑자기 기면서 이상한 신음소리를 뱉더니 나중에는 아예 누워버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오노 요코의 삶은 그녀가 81년 선보인 앨범 타이틀 그대로 '살얼음판 걷기'였다.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을 훔친 여자라는 이유로 세계인이 가장 경멸하는 인물로 낙인찍혀 온갖 '마녀 사냥'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날 그녀는 살얼음판을 걷다 물 속으로 곤두박질치기는커녕 여전히 튼튼한 얼음판 위를 걷고 있음을 보여줬다. 오노 요코 스스로도 "나이 쉰살 때, 지난 50년은 내 인생의 서막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최고의 작품은 더 훗날 만들어질 것"이라고 장담하지 않았던가.

이번 전시회 도록에는 오노 요코가 66년 1월 어느날 미국 웨슬리안대 학생들을 찾아가 전한 말이 기록돼 있다. "나의 음악은 실천이고 나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마음의 소리다. 내 작품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음악을 끌어내기 위한 것. 절대 잦아들지 않는 바람이다."

서울의 한 모퉁이 로댕갤러리에 전시된 1백26점의 작품에는 그녀가 남기고 간 마음의 소리가 서려 있는 듯하다. 10년 뒤 우리와 오노 요코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녀가 주문한 '이매진 피스'의 의미만큼은 고이 간직해야 할 일이다.

허의도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