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여수·목포·김해·포항 평준화 후폭풍…고전하는 공립 명문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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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서는 포장마차를 하려 해도 순고(순천고)를 나와야 된다는 말이 있었죠.”

“교사 전근 잦아 진학 노하우 안 쌓여”
입학 전 수업 순천매산고 등 사립고
수능 성적서 신흥 명문으로 떠올라

전남 순천의 순천고는 1980~90년대 전남 지역 최고의 명문고로 꼽혔다. 89년 서울대 전국 최다 합격(56명) 학교였고 정·관계와 법조계 등에 진출한 동문도 많았다. 외국어고가 법조인 배출 최상위를 차지하기 전까지만 해도 ‘법조인의 산실’로 불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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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고는 2005~2007년 수능 때 우수 학생(국·수·영 2등급 이내) 비율이 38~40%로 순천시내 1위였다. 하지만 2008년 수능에서 갑자기 26.1%로 떨어지더니 매년 수치가 하락해 2014년 수능에선 8.2%로 전체 수험생 중 우수 학생 비율(11%)에도 미치지 못했다.

성적 하락은 순천시의 전체적인 현상이었다. 순천은 2007년 수능 때만 해도 우수 학생 비율이 17.8%로 전국 230개 시·군·구 중 10위였다. 하지만 2008년 수능을 기점으로 급격히 수치가 떨어지더니 2014년 수능에선 95위가 됐다.

원인은 ‘고교 평준화’였다. 2008년 수능은 순천시가 고교 평준화 제도를 도입한 2005년 고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치른 첫 수능이었다. 이전까지 순천은 중학교 성적에 따라 고교에 진학하는 비평준화 지역이었지만 2005년부터 소위 ‘뺑뺑이’라 부르는 선 지원, 후 추첨의 고교 평준화 제도를 도입했다.

김경태 순천고 교감은 “예전엔 순천은 물론 완도·구례·고흥에서도 유학을 왔다”며 “하지만 평준화 이후 학교 성적이 떨어지면서 우수 학생이 굳이 순천고를 오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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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준화 제도를 도입한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수능 성적 분석 결과 2005~2015년 고교 평준화로 전환한 순천·목포·여수(이상 2005년)·김해(2006년)·포항(2008년) 등 5개 지역 모두 우수 학생 비율이 평준화 시점을 기점으로 급격히 줄었다. 목포의 경우 2007년 수능에서 우수 학생이 12.5%였다가 이듬해 9.5%로 떨어졌다. 여수도 같은 기간 12.3%에서 10.5%로 우수 학생이 줄었다. 김해·포항도 평준화 전환 후 고교에 입학한 학생이 수능을 치른 첫해에 성적 하락을 경험했다.

지역에서는 “고교 평준화가 명문고의 지형을 바꿔놓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김춘곤 전남 영암낭주고 교감은 “평준화되면서 순천고·목포고·여수고 등 전남 지역의 기존 공립 명문고가 몰락했고 우수 학생들은 군 지역의 신흥 명문 사립고로 몰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립고는 교사들이 수시로 바뀌면서 진학 노하우가 쌓이기 어려운 반면 우수 교사들을 유치한 사립고는 유용한 노하우가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순천의 경우 순천고가 1위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사립인 순천매산고가 지역의 신흥 명문으로 떠올랐다. 이 학교는 평준화 이전엔 7.7%에 불과했던 우수 학생 비율이 평준화 이후 최고 20%까지 올랐다. 정창용 교장은 “평준화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3류 학교라는 오명을 벗어보자며 전 교사가 똘똘 뭉쳤다”고 전했다.

이 학교는 입학 전인 1월에 수업을 시작하고 방과후 수업은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경우 폐강하도록 하며 교사들의 경쟁을 유도했다. 성적 우수자에겐 방학 중 미국 연수를 보내주는 파격적인 지원책도 내놨다. 순천매산고 2학년 이모(18)군은 “아버지는 순천고 출신이지만 요즘 학생들은 비전이 더 좋은 순천매산고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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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지역별·학교별 학력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기 위해 2005~2015학년도 수능 성적 원자료를 분석했다. 특히 수능 국 ·수 ·영 영역의 2등급 이내 학생 평균 비율을 구했다. 상위 11%를 의미하는 2등급은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이 수시 모집 합격을 위한 최저 등급으로 설정하는 기준이다.

전국 단위 모집 자사고와 특목고·특성화고 등은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유형이 다른 학교인 만큼 지역·학교의 일반적인 학력 변화를 살펴보는 데에는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2015학년도 수능을 기준으로 경남 마산시·진해시는 창원시에 포함했으며 충북 청원군은 2014년 청주시에 통합됐지만 분석 시기에 맞춰 별도 지역으로 구분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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