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와 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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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독일 근세 정치가 「비스마르크」의 의회 연설문이 구설수에 오른 일이 있다.
『나는 모든 「처녀」들과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철혈재상」답지 않은 고백이다. 그러나 여기엔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독일어「뫼흐텐」(Machten)을「뫼첸」(Madchen)으로 잘 못 인쇄한 것이다.
그는 「처녀」아닌「열강」과의 친선관계를 주장했을 뿐이다.
그 비슷한 일이 이번엔 미국 뉴저지주의회에서 일어났다 의회 법 가운데 회기를 규정한 문구에서 「연2회」가「2연에 1회」로 되었다. 영어「바이애뉴얼」(biannual)과「바이에니얼」(biennial)의 착오였다. 물론 착오는 뒤늦게 바로잡아졌다.
법조문 속의 하이픈(-부호)하나로 미국이 막대한 국고손실을 본 경우도 있었다. 관세법 속의 외국산「과수」(fruit-plants)에 대한 면세규정에서 그만 하이픈이 빠져 외국산「과실 및 식물」로 표기되었다. 관세면제의 범위가 엄청 넓어진 것이다.
법은 고사하고 성경의 십계명이 틀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출애굽기』20장14절의「모세」십계명 가운데 제7계『간음하지 말라』는 구절에서 「낫」(not)이 빠져버린 것이다. 1631년 영국에서 간행되었던 이른바「간음성서」사건이다.
농담 잘하는 재담 가의 말에 「유신론」과「무신론」의 차이는 1㎜도 안 된다는 얘기가 있다. 『신은 어디에도 없다』(God is nowhere)는 영어에서 「newhere」를「now here」로 고쳐 써보자. 어디에도 없던 신이 바로 옆에 와있다.
역사상 코머(구두점)하나가 사형수를 살려준 얘기가 있다. 러시아 황제「알렉산더」3세의 황후 「마리아·페도레라나」는 황제가 서명한 사형집행서의『사면하지 않음. 시베리아로 유형』이라는 문구에서 코머의 자리를 바꿔『사면. 시베리아 유형을 금함』이라는 뜻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나 같이 난센스 같은 얘기들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에선 웃지 못할 법조문「기정」사고가 일어났다. 85년8월l7일자 관보는 국가보안법 7조5항속의 반 국가단체와 관련된 문서·도서 및 표현 물에 대한 단속조문 중에서 「도서」는 「도화」의 오류로 지적, 정정한 것이다. 「서」나 「화」의 글자 모양이 비슷한 것이 유죄다.
그러나 하필 이 시기에 그런 문제가 노출된 것은 원두막에서 갓끈 매는 오해를 받을 만도 하다. 문제는 의사록에 어떻게 기록되었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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