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와 조각조화의 새예술창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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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개의 예술가들이 40을 넘기면서는 젊은 한때의 열기를 정리하고 자기 세계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비해 곽인식씨는 그런 통념을 무색케하는 실험의 연속을 지탱시키고 있는 예외적인 작가다.
82년 처음 국내전을 가지면서 우리에게 알려진 그가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해외원로작가 회고전을 기해 40년가까운 그동안의 작업을 한 자리에 펼치면서 아직도 왕성한실험의 긴장을 늦추고 있지 않음을 인상지워준다.
61년의 비정형의 추상화면에서부터 유리판·철판·동판 등의 소재에 의한 작품을 거쳐 근래의 종이 위의 채묵과 원목을 자르고 그것을 다시 제자리에 쌓아올린 조각아닌 조각에 이르기까지 숨가쁘게 자신을 몰아온 정신의 편력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준 것이었다.
초기에 해당되는 60년대 작품들엔 못· 전구· 유리판· 철판·바둑알등 회화적 소재로서는 생경하고 범속한 물질들이 등장하는데,이러한 소재들이 점차 하나의 대상으로서의 회화에 동원된 재료가 아니라 그 자체가 회화로서의 자리를 대신해줌으로써 그 특유의 소재주의의 극복과 사물의 절대화의 논리를 보여주기 시작한다.예컨대 깨어진 유리판은 그 자체가 사물로서 회화를 대신하고 회화이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초반에 걸쳐서는 철판이나 종이 위에 사각의 형을 뚫거나 원을 그려넣는 작업을 펼쳐보인다.사물로서의 회화에서 점차 표면으로서의 구조에 대한 관심의 추이가 진행되고, 그것이 채묵의 작품에와선 투명한 표면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손자국이 그대로 남은 점토나 표면에 작은 점들로 얼룩을 낸 돌덩이나 또는 거대한 원목에 까만칠로 덮어버린 것 등이 다 이 표면에 대한 구조적 해석의 편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점을 찍으면 그것이 또다른점을 끌어낸다.그러나 그것이 점으로 남지않고 초극되었을 때 비로소 나의 작품은 완성된다』고 하는 작가의 말에 귀기울이면 그의 예술은 회화이면서 동시에 회화가 아닌 투명한 인식의 세계에 놓여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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