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실속 부축키 위해 대기업규제 대폭 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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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정책을 책임진 정부당국자들이 확실히 다급해진것 같다.
벌써부터 『우리경제를 이대로 놓아 두어도 괜찮으냐』 고 민간쪽에서 계속 걱정스러워 했을때 그때마다『잘되어 가고 있는데 왜들 시끄럽게 구느냐』 고 일갈해왔던 것이 정부쪽이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정부에서는 돈을 더 풀고 세금도 깎아주겠다 하면서 대책을 서둘러 발표하고있다.
연초부터 경기가 안좋아모두 걱정들이었는데도 정부는 의연한척 하다가 수출이 고전하자 실세화명분으로 환율을 7% 가까이 올리고 수출금융의 융자단가를 올들어 세번에 걸쳐달러당 6백55원에서 7백40원까지 올렸는가하면 대기업에 대해서는 수출금융을 여신한도에서 제외시켜주는 조치를 이미 취했었다.
정부는 다시 30대기업에대해 제조업 시설투자를 여신규제대상에서 제외시겨 주는것을 비롯해 4천2백50억원의 설비자금을 추가공급하고 시설투자에 대한세금을 대폭 덜어주겠다는 요지의 투자촉진대책을 16일 발표했다.
몇달전까지만 해도 우리경제가 안정적 호황국면으로 걱정없다며 느긋해하던 경제 당국자들의 태도와 일련의 경기대응조치는 큰 대조를 보이고있다.
정부가 체면을 무릅쓰고 태도를 돌변하게 된것은 돌아가는 경제사정이 너무 안좋기 때문이다.
뒤늦게 경제상황과 방향감각을 확인한듯하다.
올해 경제성장은 당초 성장률 목표 7·5%를 크게 못미칠 5%대로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리경제의 견인차구실을하고있는 수출은 1∼7월사이 1백58억달러에 그쳐 작년 같은기간과 비교해서3·5% (5억7천만달러)나 줄어들었다.
올해 목표 3백30억달러의 달성은 이미 무망한것으로 정부에서도 보고있다.
더욱 심각한것은 기업의설비투자부진이다.
새 공장과 최신기계설비투자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제의 성장은 조만간 보틀넥(애로)에 걸리는 것은하나의 상식이다.
경제기획원과 건설부 발표에 따르면 올들어 공업용건축 허가면적은 작년 동기에 비해 30%나 감소했고 기계수입허가액도 9·2% 줄어들었다.
수출과 투자가 줄어들고있다는 사실은 경제에 빨간신호등이 켜져있음을 말해준다.
수출금융을 반년만에 달러당 85원씩 대폭 올려주고 환율을 약7%나 인상, 대외가격경갱력을 높여주었는데도 수출이 잘안되니 사태는 심각해졌다.
정부도 그동안 태연한척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부분적으로 경기대책을 동원했으나 효과가 미흡하자 더 강한 처방까지 들고나왔다.
대기업들로 하여금 투자를 더욱 많이 하도록 유인해보기로 한것이다.
대기업편중지원 억제등 시책이 투자부진의 요인이 되고 경기에도 안좋은 결과를빚자 어쩔수없이 방향전환을 한것으로 풀이된다.
수출도, 투자도 이른바 대기업들이 앞장서야 활성화될수있다는 현실을 인정한것으로 볼수있다.
방향감각은 옳다는 것이 업계의 견해다.
구조적으로 대기업이 활발하게 움직이게되면 그 우산밑에 있는 계열및 중소기업들도 잘굴러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왜 대기업편만 드느냐는 비난을 무릅쓰고 30대기업에 대해 수출금융및시설자금을 여신한도의 규제대상에서 제외시켜주는 특례조치를 취하게 된것이다.
투자촉진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만제재무부장관은『이러니 저러니 해도 우리나라 경제는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고 그들이 그것을 맡아줄수밖에 없다』면서 『30대기업그룹을 묶어놓고 투자촉진책을 말한다는 것은비현실적이다』라고 토로, 경제현실에 대한 정부내의 새로운 인식을 표명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련의 경제조처로 수출이 잘되고 투자가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정부쪽의 처방과 조치들이 적중했다면 이미 취한것만으로도 약효를 보였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못하다.
정부의 진단이나 처방자체도 번번이 실기하는 우를 범했는데 이번에도 그것을 되풀이했다는 비판을면키 어렵다.
처음 경기논쟁이 일어날때 서둘러 진단하고 약을 투입했어야 했다.
결국 6개월의 지각처방이 되어버린것이다.
좀더 문제를 들여다보면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것이 꼭 자금난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기는 어렵다.
근원적인 문제는 투자장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경제외적인 심리적 요인에 있다는 것이 많은 기업이들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의 학원법과 개헌문제를 둘러싼 여야의공방과 그에따른 시국의 경화가 기업인들의 투자마인드를 냉각시키는 작용을 할것임은 아무도 부인못할 것이다.<이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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