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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능한 곳서 공전하는 암석 행성 모두 21개 찾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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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27면

1·2 우주 곳곳에 널리 존재하는 별(항성)과 그 주변을 도는 행성을 모사한 상상도.

거의 모든 과학 기사는 마치 낯선 이의 예고없는 방문과도 같다. 지난달 11일 미 항공우주국(NASA)은 관측위성 케플러가 1284개의 새로운 외계행성을 찾았다고 발표했는데, 이를 전한 기사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기사 속에서 1284개의 새로운 외계행성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야기’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단순한 과학적 발견이 아닌, ‘이야기’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시민과 과학인 사이에 보다 많은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역사 속의 고전적인 논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티코 브라헤는 그의 방대한 관측자료에 기반해서, 지구를 중심에 두고도 모든 천문현상들이 설명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구를 좌표의 중심에 놓아도, 그 주변을 운행하는 새로운 우주론과 관측자료 사이에 큰 차이는 없었다. 그렇다면 세상의 진정한 기준 좌표는 뭘까? 등방(等方)한 우주배경 복사에너지를 기준으로 해서 속도에 의한 비등방이 없는 좌표계를 기준 좌표계로 삼을 수도 있고, 마하가 이야기 하듯이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부동의 별을 기준으로 할 수도 있다.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외계 행성들. 생명이 존재하는 행성을 찾겠다는 미 우주항공국의 케플러 프로젝트에 따라 케플러 우주 망원경이 발견한 것들이다. 왼쪽에 표시된 별 주변을 도는 행성은 25배로 확대한 크기다. 오른쪽 위에 있는 지구와 크기를 비교할 수 있다.

중세시대 브루노 외계인 존재 주장하다 화형 보편성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구가 정말 움직이고 있는지가 아닐 수 있다. 이 논쟁의 핵심은 우주와 생명 사이의 관계다. 물리적 보편성 논쟁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생물학적 보편성 문제다. 코페르니쿠스의 원리가 맞다면 인간은 무한한 우주 속에서 보편적인 존재로 정의돼야 한다. 그런데 이런 논쟁이 오래 전에 끝났다고 믿고 있는 21세기에도 가장 결정적인 증거자료는 나오지 않고 있다. 마치 진화론을 믿으면서도 연결화석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처럼, 우주의 보편성에 의지하면서도 지구 밖 생명의 흔적을 찾지 못한 것이다.


중세시대 진정한 의미의 과학 순교자는 조르다노 브루노였다. 그는 지구중심 사상을 극복하기 위해 어디까지 도전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우주는 무한하고, 이 무한한 우주에는 태양과 같은 별이 어디든 존재한다. 그 별 주위에는 행성이 존재하고, 확률적으로 이 행성 중에서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행성도 있을 것이다. 이 행성에 생명이 존재해서 인간이 이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까지 증명돼야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이 된다. 브루노는 이런 보편적 세계관에 기반해 외계인이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과학인들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했던 종교재판도 브루노를 인내하지 못하고 화형이라는 극단적 판결을 내린다.


그런데 NASA가 발표한 1284개의 행성 중에는 죽음 앞에서도 굽히지 않았던 브루노의 신념을 증명할 단서가 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대부분은 태양처럼 에너지원 역할을 할 수 있는 항성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항성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이 정말 존재하는지는 1992년이 돼서야 증명된다. 그 이전에 언급되던 행성은 실제 관측된 행성이 아니고, 드레이크 방정식의 변수로 가정한 이론적 기대치에 불과했다. 브루노가 순교한지 392년이 지난 후에야 그의 주장 중 일부인 행성의 존재가 증명된 것이다.

지난달 9일 수성이 태양을 통과하는 모습.

스스로 빛을 발산하지 않는 행성을 찾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지난달 9일 미국 뉴욕에서는 오전 7시에 수성이 태양의 왼쪽편에서 나타났다. 이 작은 검은 점은 7시간30분간 태양을 가로지르는 일면(日面)통과를 했다. 만일 수성보다 큰 행성이 일면통과를 했다면 태양 밝기가 조금 어두워졌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아주 멀리 있는 별의 밝기를 정밀하게 관측하고 있는데, 이 별의 밝기가 주기적으로 어두워졌다 밝아지는 현상을 반복한다면 행성이 그 별의 앞을 지나간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런 관측 방법은 비교적 큰 행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1990년대에는 마초(MACHO, 헤일로를 이루고 있는 거대 질량체)라는 암흑물질 후보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은 천체는 은하단에 다수 존재해 보이지 않는 중력원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었다. 빛이 중력에 의해서 휘는 현상은 거대한 아인슈타인 동심원을 만드는 강한 중력렌즈 효과나 광원에 해당하는 은하의 모양을 변형시키는 약한 중력렌즈 효과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아주 작은 물체가 광원을 지나가는 경우 순간적으로 빛의 밝기를 키우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미시 중력 현상이라고 부른다. 만일 암흑물질이 미지의 천체들이라면 은하단 여기저기서 이 미시 중력현상이 관측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현상은 관측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방법은 작은 암석행성을 찾는 데 이용할 수 있다. MACHO 암흑물질이 일으키는 미시중력 현상처럼 이 작은 암석행성도 별의 밝기 변화에 영향을 줄 수가 있다.


92년 알렉산데르 볼시찬과 데일 프레일은 초신성 폭발 후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별의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들을 처음 발견한다. 그 이전에도 외계행성 관측이 보고됐지만 검증이 이루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이 행성들이 인류가 최초로 발견한 외계행성이다. 인류가 비로소 별에서 행성으로 첫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죽어가는 별보다는 주계열에 있는 태양과 같은 별, 즉 수소핵 융합 반응으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발산하는 별 주변에서 생명이 탄생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태양과 같은 별 주변을 도는 행성은 3년 뒤인 95년에 미셸 마이어와 디디에 켈로즈가 페가수스자리 51번 별(51 Pegasi)로 알려진 주계열 별 주변에서 발견한다.

케플러 우주 망원경. 2009년 발사돼 지구에서 6500만㎞ 떨어진m 태양궤도를 돌며 외부행성을 찾아내고 있다.

볼시찬·프레일 1992년에 외계 행성 첫 발견하지만 초기에 발견한 대부분의 행성들은 목성처럼 크고 가스 상태여서 생명이 존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제 관측은 지구 크기의 암석 행성에 집중된다. 지구형의 행성은 9년이 지난 2004년에야 제단자리 뮤(Mu Arae, 제단자리에 있는 별) 근방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우리가 찾는 행성은 단순한 암석 행성이 아니고, 별에서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어 물이 존재할 수 있는 행성이다. 태양계에서는 이 생명이 가능한 지역에 있는 행성은 지구와 화성뿐이다. 생명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을 기준으로 보면 물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물이 얼거나 증발하지 않고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구역은 좁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NASA가 발표한 1284개의 행성 중에서 암석으로 이루어진 행성은 550개이고, 이 550개 행성 중에서 생명이 가능한 위치에서 공전하는 행성은 9개 정도다. 기존에 찾은 것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인류는 생명이 가능한 지역에서 공전하는 암석 행성을 모두 21개를 발견했다. 이 기사는 인류가 우주의 보편성 문제에 도전하고 있는 여정에서 이제 거의 마지막 관문 바로 앞까지 온 것을 알리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한, 그리고 앞으로 계속 발견할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행성은 우주생명을 증명하는 마지막 단계로 가기 위한 패스파인더의 역할을 할 것이다. 이미 60년대 우주의 생명을 찾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시작됐다. 만일 외계행성에 인간과 같은 고등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가장 일반적인 파장 영역인 전파신호를 사용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외계신호를 찾기 위한 외계의 지적생명탐사(SETI) 프로젝트에, 발견된 외계행성들은 유용한 정보일 것이다.


생명이 존재할 조건은 단순히 별에서 떨어진 거리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태양계에서도 지구와 화성에 모두 생명이 존재할 수 있지만, 대기가 희박한 화성에는 생명이 없다. 지금까지 발견한 21개의 생명 가능 행성 을 대상으로 보다 정밀하게 생존조건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정밀 분광 기술을 이용한 대기분석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대기의 존재, 자전주기 그리고 액체 상태의 내핵 등 다양한 조건이 있다. 누군가는 조만간에 생명을 확인하기 위한 이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는 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생명체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행성을 1995년 처음 발견한 미셸 마이어 박사(오른쪽)와 디디에 켈로즈.

고등생물이 파멸하는 현상마저 보편적이라면…물리적으로 최적의 환경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 행성에서도 생명이 있을 것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생명현상이 아주 특별하거나 혹은 아주 보편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은 이 우주에 보편적이지만, 정작 생명이 탄생하는 현상은 아주 특별해서 지구 이외에 다른 곳에서는 발생하지 않은 사건일 수 있다. 그 다음은 생명이 탄생해서 고등생명으로 진화하는 현상이 이 우주에 아주 보편적인데, 이 고등생명이 스스로 파멸하는 현상마저도 보편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인데, 인간은 100만 년을 살았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 모든 고등 생명이 인간과 같다면 생존기간이 아주 짧아 발견될 확률도 적다. 드레이크의 방정식에 고등생명의 자멸 변수를 넣으면 생명이 있는 행성의 수는 아주 작아질 것이다.


우주에 생명이 실제 확인되기 전까지는 우린 아직 보편적인 우주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특별함에서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에 묘사된 고립과 파멸도 보인다. 인간 앞에 놓인 파멸의 위기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고립된 자아의 자살과 많이 닮아 있는 것이다. 통합은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희생을 요구하지만, 생명을 번성시킨다. 외계생명 연구에서 이런 통합의 단초를 발견하고, 새로운 인류생존 패러다임도 제시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송용선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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