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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비상 (1) 안전한 시민생활을 위한 캠페인|은행예금까지 빼내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밤낮이 없다.
장소도 사람도 가리지 않는다.
아무때 어디서 누구에게건 기회만 잡으면 흉기를 들이댄다. 금품을 빼앗고 인명까지도 아무렇게나 해친다. 떼지어 다니다 잡으려는 경찰관에까지 칼질을 예사로 한다.
강도-. 경찰의 1백일 소탕작전이 내려진 속에서도 7월한달동안 서울시내에서 1백81건이나 발생 하루 6건이 넘고있다. 신고안된것까지 합치면 하루평균 10건꼴의 강도가 날뛰고있다.

<「경비」완장차고 덮쳐>
최근엔 현장의 재물을 약탈하는 순간범행의 종래 차원을 넘어 가족을 인질로 은행의 예금까지 빼내가는 치부형 복합범행으로 까지 발전했다.
떼강도·인질강도·신사복강도·차치기강도…. 한여름에도 무더위가 가시는 잔악범죄의 세계를 본다.
무더위가 한창 극성을 부리던 지난달22일 상오11시쯤 서울반포본동주공아파트 62동205호 이효원씨(55)집.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맨 신사복차림의 건장한 청년3명이 「경비」라고 쓰인 노란색완장을 차고 현관의 초인종을 눌렀다.
큰딸 (25) 과 함께 집을지키던 이씨의 부인 박영숙씨 (52)는 『아파트에 도난이 심해 조사하러왔다』는말에 의심없이 문을 따줬다.
그러나 현관에 들어서는 신사복 청년들의 손엔 날이 시퍼런 흉기가 들려있었다. 목에다 대는 칼날에 박씨는 『악』비명뿐 저항할 용기를 잃었다.
박씨모녀를 안방에 몰아넣은 신사복들은 『현금있는곳을 대라』고 윽박지르며 집안을 뒤져 장롱서랍에서 6백30만원이 든 예금통장을챙겼다

<이젠「치부」위해 범행
『꼬마가 은행에 갔다와. 우리는 이들을 감시하고 있을테니까.』
두목인듯한 「30대」가 키가 제일작은 공범에게 명령하자 「꼬마」는 이씨집에서 1km쯤 떨어진 제일은행반포지점으로가 박씨로부터 캐낸 비밀번호를 대고 6백30만원을 고스란히 빼냈다. 『아까 찾으면서 보니까 또다른 3백만원이 온라인으로 입금돼 있던데 그돈도 챙기자구』
은행을 다녀온 꼬마의 귀띔에 두목은 박씨 모녀를 전기줄로 꽁꽁묶어 안방에 처박은뒤 훔친 스텔라 승용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범인들은 이날낮1시쯤 제일은행 잠실서지점에 다시 나타나 3백만원을 마저 찾으려다 몸부림끝에 포승을 푼 박씨의 신고에따라 은행이 예금지급을 정지한것을 알고달아났다. 「생존」이 아니라 「치부」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범행이 오늘날 강도의 생리다.
29일새벽3시쯤 서울한남2동의 외국인거주 밀집지역. 미국인 무역업자 「게리·셔먼」씨 (34)집.
담을 넘어 침입한 20대 3인조 강도가 한국인부인박모씨 (31)를 흔들어 깨웠다.
잠결 인기척에 눈을뜬 박씨는 남편의 목에 칼을 들이댄 범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신부폭행…정신이상>
『다이어반지, 달러 어디있지』-범인중 황정원 (20)이 박씨를 윽박지르자 남편 「셔먼」 씨가 벌떡 몸을일으켰다. 이 순간 범인 황이 비호처럼 몸을날려 「셔먼」씨의 왼쪽가슴을 과도로 찔렀다.
미국인 「셔먼」씨는 말도제대로 통하지않는 이국인에게 비명도 지르지 못한채 무참히 피살된것이다.
범행을하다 들키면 달아나기는 커녕 상대방이 피해자건 경찰관이건 흉기를 마구 휘두르는 「겁없는 강도」. 인명을 우습게 여기는 병든 사회의 반영이다.
지난6월10일 서울신사동 주택가골목에선 10대 3인조 강도와 무장경찰등 3명이 맞서 피튀기는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
경찰에 포위된 10대강도들은 한양파출소 윤민상순경(35)을 흉기로 찌른 뒤 권총을 쏘는 남은 경찰의 추격을 피해 달아났다가 다음날에야 붙잡혔다.
범인의 흉기에 의한 경찰관 사상자는 해마다 늘어 83년 57명, 84년 64명, 올핸 5월말현재로 32명. 신고를 못하도록 부녀자를 욕보이거나 보복위협을 하는 잔학·포악성도 근래 두드러진 강도의 생태.
지난해3월 서울갈현동 홍모씨(29·여·전직교사) 집안방. 홍씨는 잠옷차림으로 엎드려 『결혼패물까지 다 줄테니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빌었다. 옆에는 나일론끈에 손발이 묶인 남편(31)이 역시 공포에 질린채 떨고있었다.

<극형선고도 실효없어>
3인조 복면강도가 든 것이다. 그러나 패물을 건네받은 범인들은 남편이 보는앞에서 홍씨를 발가벗긴뒤 손발을 묶고는 차례로 폭행을 한뒤 유유히 사라졌다. 그후 친정으로 간 홍씨는 넋을 잃고 폐인이 되어버렸다. 눈만 감으면 검은스타킹으로 복면을 한 범인모습이 망령처럼 떠올라 지금까지 정신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신혼 1년도 안돼 가정도 학교도 모두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두달후 검거된 범인들은『부녀자를 폭행해야 수치심 때문에 제대로 신고를 못해 범행후 마음이 놓인다』고 태연히 경찰에서 진술했다. 그동안 검찰·법원이 기회있을때마다 가정파괴범은 극형으로 다스린다고 경고를 했고 몇차례 중형선고까지 있었지만 별달리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3월5일 새벽 3인조 복면강도에게 1천5백만원을 털린 윤모씨(63·서울대치2동)는 범인들에게 『절대신고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가 경찰에 신고한뒤 1주일간이나 『약속을 지키지않고 신고했으므로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는 범인들의 전화협박에 온가족이 공포에 떨어야했다.
강력사건 발생빈도도 자꾸만 늘어 80년 6천5백65건에서 84년에는 8천1백4건으로 4년사이 23.4%나 늘었다.
지난해 강도사건의 15%는 대낮강도.
범인들의 살상률도 계속늘어 83년의 39.8%에서 84년에는 40.7%로 높아졌다. <고도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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