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9)-제82화 출판의 길 40년(72)-연재를 끝내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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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늘로써 다소 지루했던 나의 이야기를 끝마치려 한다.
신문사가 요구한 것은 내 개인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였지만 막상 글을 쓰는 동안 내 당초의 의욕과는 많이 달라졌다.
나는 아직 현업에서 활동중이고, 따라서 내 주변 얘기는 바로 오늘을 살고있는 많은 사람들과 직접 관계되는 얘기여서 그 공개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못다한 얘기들은 이 연재를 계기로 다른 출판인에 의해 다시 정확하게 기록되기 바란다.
한국 근대 출판의 역사는 해방이후 불과 4O년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고, 젊음을 바쳐 출판의 현장에서 일해 온 내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다. 해방을 맞은 내 앞에는 아무도 걸은바 없는 설원이 가로놓여 있었고, 동서남북을 분간할수 없으며 아무도 길을 가르쳐주지 않는 이 설원을 헤매면서 이제까지 출판외 길을 걸어왔다는 남다른 감회가 있다.
우리시대를 단절의 시대라고 한다. 일제36년의 단절, 국가분단의단절, 6·25전란에 의한 단절, 그리고 수많은 정치적·사회적 격변에 따른 갖가지 단절로 하여 우리 출판의 역사 역시 세대와세대 사이에 온당한 연속성을 획득하지 못한채 단절의 쳇바퀴만 굴려온 느낌이다.
한국출판사의 연속성 회복은 출판발전에 있어 시급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부족하나마 이제까지 나의 이야기는 이런 측면에서 그 뜻을 찾아주었으면 고맙겠다.
오늘의 우리출판계는 해결 해야할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그가운데서도 독서교육의 문제는 원천적으로 대단히 심각하다. 교육자체가 안고있는 모순은 다른 분야에뿐만 아니라 특히 출판분야의 발전에서 큰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밤늦게 정원을 거니노라면 나의 집 뒤편으로 K고등학교가 시야에 곧바로 들어온다. 10시가 넘은 시각인데 교실은 형광등 불빛으로 밝혀져 있고 어린 머리통들이 옹기종기 밤늦은 줄 모르고 공부하는 애처로운 모습이 보인다.
저녁 도시락까지 싸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다. 자유분방하게 자라야 할 한창인 어린 싹들을 저렇듯 교실에 가두고 극성떨며 입시공부만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얼마나 가치있는 내용들일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발육해야 할 시기에 저처렴 입시라는 울가미를 씌워놓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정신적으로 잘 발육된다는 것은 자유롭고 풍부한 교양을 섭취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의 대부분은 바로 독서를 통해 가능한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내 손자아이가 방학동안 보충수업을 하겠다기에 나는 못하도록 말렸다.
평소 시달리던 학업에서 해방되어 휴식과 교양 충전의 시간으로 예비해 놓은 이 제도마저 입시준비의 시간으로 박탈하고 있으니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같은 교육 풍토 속에서라면 우리의 출판산업 역시 빈약해지고 왜소해질 것임은 뻔한 노릇이다.
백년대계라는 차원에서 교육제도가 확립되지 않는 한 우리문화의 밝은 앞날은 도대체 기대할수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교육자, 도서관인, 동료출판인, 그리고 많은 이들로부터 격려와 더불어 관심있는 충고를 들었다.
출판의 문제가 이사회 온갖 분야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그때마다 변변치 못한 내 글솜씨를 부끄럽게 생각하곤 했다.
이 글을 쓰는데 자료를 주고, 질의에 친절히 응해 주고, 도움을 아끼지 않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며 붓을 놓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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