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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재수생의 우울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대학입시 실패로 재수하다 우울증 치료를 받게된 한 학생의 고백이다.
고등학교 성적이 좋았던 이 학생은 부모가 바라는대로 명문대학에 원서를 넣었지만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실망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내년에야말로 고득점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일류학원에 나가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했다. 고등학교때 친구, 학원의 친구들과의 교제마저 끊고 오로지 입시준비만 했다.
몇달동안 이렇게 지내다가 이 학생은 주위환경이 크게 변해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도 자신에게 얘기를 걸지않고,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게된 것이다. 그 순간부터 이 학생은 심한 외로움을 느끼게 됐고 공부를 조금만해도 피로해 제페이스를 찾을수 없게됐다.
그때 마침 누나뻘 재수생과 몇마디 얘기를 나눈 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급속히 친해졌다.
여자재수생을 만나면 마음이 가라앉고 포근함을 느끼게된다는 얘기였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던 어느날 여학생은 서로를 위해 더이상 만나지 말자면서 만남을 거절했다.
그후 이 학생은 혼자서 밤거리를 헤매다 늦게 집에 돌아오는 생활이 계속됐다.
당연한 결론이지만 다음해 학력고사점수는 더 나빠졌고 웬만한 대학조차 진학이 어렵게 된 학생은 우울증에 빠졌다.
학생의 부모는 맞벌이 부부로 부부의 귀가시간이 늦고, 집에 돌아와서는 각자 지쳐 있어 아들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학생의 얘기로는 가족끼리 한바탕 웃어 제치는 그런 분위기를 원했지만 두 분의 표정에 그런 여유가 없어 대부분 자기방에서 지냈다는 것이다.
가끔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볼 요량으로 아프다고 하면 약을 사다주든가 보약을 사다주는 정도였다.
재수생의 스트레스는 학생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찬 것이다. 그래서 어딘가에 의존해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
이럴때 적절한 배출구를 찾지 못하면 반동적으로 술·담배에 의존하거나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려 순간의 향락에 빠진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여자쪽은 아내·어머니·직장인의 3중역할을 해내야 하므로 이것이 원만치 않을때는 분노·죄책감등을 느끼거나 때로는 감정이 무관심이라는 형태로 표출되는 수가 있다.
두번째 병원에 온날 『우리집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랑이며 대화』라고 신음하듯 내뱉는 이 학생의 얘기는 얻는 것이 있을때는 잃는 것도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 교훈이 될 수 있다. 유계준<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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