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예술공연 민족 동질성확인의 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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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노계원 <본사논설위원>
오는 9월은 l천만 이산가족들에게 실로 40년만에 맞는 희망과 기대에 찬 시간이 될 것인가. 15일 열린 남북적십자사 실무자 접촉에서 양측은 이산가족고향방문단을 오는 9월에 서로 교환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방문단의 일정과 인원, 방문지역등 아직도 결정되지 않은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남북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이라는 민족적 과업이 사소한 부수문제들에 의해 장애를 받을 어떤 명분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산가족의 고향방문과 동시에 실현될 예술공연단의 교환공연도 역시 역사적인 뜻을 갖는다. 본래는 한 뿌리였던 민족예술이 반세기에 가까운 단절의 세월 속에 어떻게 발전했고 변모했는가를 직접 국민들이 비교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교환되는 분야가 비록 무대공연예술이라는 극히 한정된 부분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대중과 가장 직접적으로 밀착된 예술분야라는 점에서는 서로 상대방의 실상을 포착하고 인식하는데 적절한 대상이 될 것 같다.
북한의 문화예술이 이른바 공산주의 미학의 표본으로서 사회주의·공산주의사회 이전의 모든 사회제도에 대한 비판과 공산주의 혁명 및 건설에 대한 복무성을 전제로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의 문예정책은 이른바 노동당의 주체사상 구현에 목표를 두고 「인민적·혁명적 문화건설」을 표방하면서 「문화예술은 혁명의 이익과 당의 노선을 떠나서는 안되고 근로대중을 공산주의적 혁명정신으로 교양하는 당의 무기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관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자유로운 생각이 예술의 주제가 될 수 없고, 전통문화의 수용에서도 우리민족의 고유 예술들이 견강부회식으로 자기들 체제옹호에 원용되고 있을 뿐이다.
공연내용에 대해 우리측은▲정치적 성향을 지닌 내용을 배제하고 민족전통중심의 예술이어야 하며▲특정인의 찬양이나 정치선전·대중선동을 목적으로 하는 내용은 안된다는 점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자기네 지도자들에 대한 찬양과 혁명·투쟁같은 호전적 주제로 일관된 그들의 예술가운데 어떤 것이 이 조건에 해당되지 않은 것이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작품을 북한동포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해서 우리 한민족이 지녀온 고유의 유산인 전통예술과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 공감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예술이면 충분하다. 40여년의 분단이 가져온 문화적 이질감을 뛰어 넘어 함께 느끼고 함께 울고 웃으며 박수칠 수 있게 함으로써 구호나 선전이 아닌 감정의 교류를 통해 남북이 인위적으로 갈라놓을 수 없는 단일민족임을 일깨워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 개개인의 자유로운 감정의 향유가 얼마나 값지고 소망스런 것인가를 느끼도록 함으로써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교감을 이룰수 있어야 할것이다.
이러한 대전제아래서 공연종목을 선정하면 좋겠다.
우선 우리의 전통예술부문에서는 장엄한 궁중아악과 가야금·거문고·대금·단소등 민속악기의 합주 및 독주가 있어야 하고, 이미 북한에서는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명창의 판소리 몇대목도 들어가야 하겠다. 또한 화려하고 흥겨운 사물놀이·북춤·장고춤·부채춤이 있고,봉산탈춤과 북청사자놀이등도 빼놓을 수 없는 종목이다.
광복의 기쁨과 분단의 비극을 잇달아 겪어야했던 1940년대의 구성진 대중가요와 우리가곡은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면 누구나 겪었던 역사를 되새기기에 충분하고 그러한 역사를 거쳐 오늘날에는 우리가 얼마나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요즈음 즐겨부르는 가요와 가곡도 곁들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단편적인 종목들이 하나의 맥을 이루는 것으로 전반부를 꾸민다면 후반부는 총체적인 종합예술이 선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 분야도 현대연극이나 뮤지컬보다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전통유산을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켜 시대감각에 알맞게 가치를 부여하며 즐기고 있는가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예컨대 정통오페라나 뮤지컬 『춘향전』도 좋을 것이고, 해학과 위트가 넘치는『배비장전』이나 『시집가는 날』 같은 뮤지컬도 적절한 레퍼터리가 될 것 같다.
우리의 예술에는 북한동포에게 선전하고 외쳐대야 할 구호가 없다. 또 이번 방문공연을 위해 특별히 새로 만들어 내야 할 이유도 시간도 없다. 우리가 평소에 공감하고 즐기는 것들 가운데 좋은 것을 골라 북한동포들에게 선보임으로써 우리의 공연 예술현실을 알리고 단절 40년의 벽을 넘어 함께 교감하는 민족적 축제로 꾸미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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