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니비사우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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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올들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 원수로는 네번째 귀빈인 기니비사우공화국의 「조앙· 베르나르도· 비에이라」 대통령이 25일 3박4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공식방문했다.
우리 국민들에게 비교적 잘 알러져 있지 않은 기니비사우란 나라를찾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세계지도를 놓고 아프리카대륙의 최서단에 눈길을 주면 금방 찾을수 있다. 북으로 세네갈, 동족과 남쪽으로는 기니와 인접한 기니비사우공화국은 면적 3만6천1백25평방km, 인구 81만명의 소국이다. 수도는 비사우로 11만명의 주민을갖고 있다. 땅덩어리로 따지면 한반도의 6분의1밖에 안되며 인구는서울의 웬만한 구보다도 적다.
1446년 포르투갈인들이 상륙한 이래 노례무역의 기지로 활용되다가 1879년에는 아예 식민지가 돼버렸다. 그래서 포르투갈에 대한 거센 저항운동이 벌어져 1956년에는 기니카포베르데 독립아프리카정당(PAIGC)이란기구가 발족하여 그 항쟁을 조직화했다. 기니비사우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것은 1973년 9월이다.
그러나 독립후 이 나라는 또 하나의 문제에 부닥쳤다. 이 나라 바로 앞바다에 있는 카포베르데공화국과의 관계다.
면적 4천33평방km에 인구 31만명의 카포베르데는 포르투갈의 후예들이 원주민과 혼혈을 이루고 있는 나라로 문맹율 80%에 가까운 기니비사우보다 교육수준이 높다.
그 카포베르데 출신의 「가브랄」 이 기니비사우의 국가평양회의장으로 취임하여 두 나라의 합병을 추진한것이다.
여기에 반기를 든 것이 당시 수상이며 군총사관인 「비에이라」 장군이었다. 그는 80년에 쿠데타로 「가브랄」 을 축출하고 대통령이 되였다.
올해 46세인 「비에이라」 대통령의 인적사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60년 PAIGC에 입당하여 정치위원등을 역임하면서 독립투쟁에 가담한 국민적 영웅으로만 알려져 있다.
기니비사우는 독립후 경제적으로사회주의체제를 채택, 75년에 전국토를 국유화했으나 1인당 GNP는 84년 기준 2백25달러며, 경제활동 인구의90%가 영세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땅콩과 야자유가 주산물이며 82년의수출은 l천2백만달러, 수입은 5천만달러에 이른다.
외교적으로는 비동맹에 가담, 북한과도 수교하고 있으며 우리와 국교를 맺은 것은 83년이다.
「비에이라」 대통령은 82년에 평양을 방문한 일이 있다. 그가 이번한국에서 무슨 인상을 받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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