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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 출신 20대 국회의원 6인의 경제 성향·정책 들어보니] “조선·해운업 실업대책 세우고 산업은행 대대적 문책해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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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20대 국회가 문을 연다. 총선에서 경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경제·기업 관련 전문가가 이번 국회에 많이 당선됐다. 특히 회계사 출신 의원이 6명으로 크게 늘어 관심을 모은다. 막연히 ‘경제가 잘 돼야 한다’거나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하겠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알맹이 빠진 구호를 넘어 한국 경제와 기업의 세세한 부분을 살필 수 있는 전문가가 국회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은행 통한 양적완화에도 부정적 ... 성장동력 확충, 재벌 지배구조 개편에도 관심

이들은 탄탄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와 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가다듬고 있다. 이들 면면과 앞으로의 계획, 경제 분야 이슈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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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50.83세. 회계사 출신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6명의 평균 연령이다. 20대 국회 전체 의원 평균 연령이 55.5세인 것과 비교하면 5살 이상 젊은 편이다. 6명 중 절반이 40대로 왕성한 활동이 기대된다. 정당별로 보면 더불어민주당 3명, 국민의당 2명, 새누리당 1명이다. 야당이 이번 총선에서 경제를 핵심 이슈로 부각시키면서 경제 전문가 영입에 적극 나선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재선 1명을 제외하면 모두 초선으로 정치 경험은 적은 편이다.

대신 회계사로서의 이력은 화려하다. 재선인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과 초선인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은 1990년 회계사로 등록했다. 김 의원은 청운회계법인을 거쳐 기획재정부에 몸을 담았다가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일했다. 유 의원은 인덕회계법인을 거쳐 인천도시공사 상임감사와 계양복지지원 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유일한 여당 의원인 엄용수 의원은 1991년 회계사에 등록해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을 거친 뒤 연이어 밀양시장에 당선되며 일찌감치 정치 경력을 쌓았다. 1997년 회계사에 등록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금융감독원을 거쳐 삼일회계법인을 다녔고 인하대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했다.

1998년 등록한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은 코스닥위원장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서강대 부총장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최연소인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은 2003년 회계사에 등록해 삼일회계법인을 거친 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와 경제개혁연구소 등 시민단체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왔다.


정무위·기재위 희망 1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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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의원은 대부분 회계사 이력을 살릴 수 있는 국회 상임위를 바라고 있다. 금융정책 등을 관장하는 정무위원회와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위원회를 희망 상임위원회로 꼽았다. 김관영 의원과 유동수 의원은 ‘세법 개정’에 기여하기 위해 기재위에서 활동하고 싶단 소신을 밝혔다. 채이배 의원은 “재벌개혁과 경제개혁 활동을 위해”, 최운열 의원은 “전공인 금융을 살리기 위해”라며 정무위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답했다.

각 의원은 회계사답게 저마다 경제·금융 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앞에 내세우고 있다. 최운열 의원은 ‘기업지배구조 개선, 순환출자해소, 금융경쟁력 강화’와 관련해 회계사로서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법안을 마련 중이다. 김관영 의원과 채이배 의원은 공정거래법·상법·상증세법 등의 개정을 통한 ‘일감몰아주기 근절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박찬대 의원은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소비자집단소송법을 준비 중이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엄용수 의원은 농촌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농산물 적정 생산량 체계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유동수 의원은 ‘정책실명제를 전면 도입·확대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예산 상시 검사제 도입’ 등으로 정책과 정부에 대한 회계감사역을 자처한다.


규제개혁, 벤처정신, 교육혁명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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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바라보는 한국 경제와 기업에 대한 입장에 관심이 집중된다. 기업 관련 법안이나 경제 정책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 기업의 성장동력 부족, 넘치는 부실기업, 재벌 중심의 지배구조를 한국 기업의 최대 문제점으로 지목한다. 기업이 발전하기 어려운 걸림돌로는 일감몰아주기 등 불공정 거래와 일관성 없는 기업 지원과 규제 등을 거론한다. 혁신을 주저하는 부족한 기업가정신 등 기업문화도 걸림돌로 지적한다. 현재 한국 경제의 과제로는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규제 개혁, 공정거래질서 등을 공통적으로 손꼽는다. 탈출 해법으로서의 키워드는 벤처정신, 혁신, 미래 성장동력, 교육혁명 등이다.

김관영 의원은 “4세에 이르는 재벌이 문어발식 경영을 통해 일감몰아주기 등을 계속하는 게 한국 기업의 현실”이라며 “기업이 창의력을 잃은 것이 한국 기업의 최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부실기업을 신속하게 구조조정하는 한편 벤처정신을 회복하고 서비스 산업 발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찬대 의원은 ‘한반도 안보 불안, 비민주, 양극화’ 등 한국의 특수한 기업 환경을 한국 기업의 최대 문제점으로 지목했다. 박 의원은 “불공정한 경제생태계를 개선해 대·중소기업이 균형발전하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한국 경제 체질 변화를 요구했다. 엄용수 의원은 “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는데 규제는 불필요하게 많고 노사정이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있어 문제”라며 “노동개혁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이 신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동수 의원은 “풍부한 자원과 저임금 노동력을 가진 중국 기업과의 경쟁이 한국 경제의 최대 난관”이라고 지적하면서 “정부의 기업 지원과 규제가 일관성이 없고 기업은 경쟁의 규칙을 지키자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유 의원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국내외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규제를 정비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산업을 집중 지원·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이배 의원은 재벌 문제를 한국 기업의 최대 문제로 꼽으면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신성장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선 획일화된 교육을 창의적인 교육으로 전환하는 교육혁명과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조정해 혁신적인 과학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대기업 중심의 정책적 지원을 중소기업으로 전환하는 벤처 혁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최운열 의원은 “한국 기업은 신성장동력을 상실했고 기업가 정신은 쇠퇴했다”며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 부채에 대한 대책을 세워 새로운 시대 패러다임에 맞는 정책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는 지난 대선 이전부터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하지만 그 개념과 시행 방향에 대해선 아직 정당별·의원별로 백인백색이다. 회계사 출신 의원 6인 역시 각자 다른 입장으로 경제민주화를 이해하고 있다.

각자 ‘약자에 대한 배려’(김관영), ‘양극화 해소와 구성원 간 조화로운 사회’(박찬대), ‘부의 기회 편중을 완화, 지속 가능한 동반성장’(엄용수), ‘공정 경쟁 규칙이 지켜지도록 엄격히 감독·통제’(유동수), ‘불공정·불평등·양극화·일자리불안 해소로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채이배), ‘양극화 해소와 공정거래 질서 확립, 지하경제 양성화, 조세제도 개선’(최운열) 등으로 경제민주화를 정의하고 있다.

유동수 의원은 “공정경쟁 규칙이 지켜지기 위해선 기업이 소신껏 역량을 발휘해 경쟁할 수 있도록 입법과 행정 측면에서 규제와 지원을 포함한 모든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이배 의원은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때문에 발생하는 불공정한 양극화, 대·중소기업과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불평등과 일자리 불안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가 확립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운열 의원은 “국민이 국민답게 사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경제민주화”라며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지하경제도 양성화하고 조세제도도 개선해야 경제민주화를 완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기업회계 공정성 6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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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성향을 나타낸 야당이 20대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국회의원이 가진 재벌에 대한 입장이 기업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회계사 출신 의원 6인은 재벌이 이제까지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점에 대해선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엔 보다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운열 의원은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범위 내에서 자율성을 줘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증여·상속이나 납품 업체와의 불공정 거래에서는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용수 의원은 “(재벌이) 국내 시장에서는 중견·중소기업과 상생협력하고, 집중된 자본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동수 의원은 “지배구조를 정비하고 경쟁력 있는 업종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찬대 의원은 “건전한 경제생태계를 만들고 공정한 경제 성장을 위해선 재벌 구조에 대한 적절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벌개혁을 위한 활동을 이어왔던 채이배 의원은 “재벌총수 일가의 불법 행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계사 출신 의원이 바라본 한국 기업회계의 공정성 점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68점에 불과했다. 6명 모두 기업회계 분야 전문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의 투명성이 부족하단 지적으로 풀이된다. 독립적인 외부회계감사를 통해 실질적인 감사를 실시해야 한단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최저점인 50점을 준 김관영 의원은 “기업주가 투명한 회계처리에 대해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고점(79점)을 준 박찬대 의원도 “현재의 외부회계감사제도와 권한 만으로는 조직적 분식회계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투명성을 확보하려면 외부감사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엄용수 의원은 “회계부정에 대한 내부통제시스템이 미비하다”고 지적했고, 유동수 의원은 “회계기준은 국제 기준에 뒤쳐지지 않는 수준으로 정비됐지만, 기업 재무자료 공시와 감독제도를 보완하고 회계투명성에 대해 기업의 인식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이배 의원은 “회계감사인의 독립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했고, 최운열 의원은 “회계투명성을 제고하고 CPA감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최근 추진 중인 조선·해운사 구조조정에 대해 회계사 출신 의원들은 ‘정부의 실업대책 우선 마련’과 ‘양적완화에 부정적’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들 대다수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추진하는 구조조정 방안 중에 실업 대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세금으로 자본을 확충하는 데 대해선 지원 전에 책임부터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적자금은 실업자 구제와 전업훈련에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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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의원은 “이미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이 대우조선(4조2000억원)·STX(4조원)에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큰 변화가 없었다”며 “공적자금은 기업회생보다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자 구제와 전업훈련 등에 사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동수 의원은 “정부가 구조조정에 개입할 순 있지만 부실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의 ‘땜질식 구조조정’으로 흘러선 곤란하다”며 “정부는 구조조정 추진과 함께 실업 대책과 업종 전환에 주력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금통위원을 역임했던 최운열 의원은 “채권단 중심의 상시 구조조정을 정립해 채권단이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대주주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며 “한은의 양적완화를 통한 산업은행 공적자금 투입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김관영 의원은 “구조조정은 불가피하지만, 대부분의 부실기업 대주주가 산업은행이니 산업은행 임원진에 대한 대대적인 문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이배 의원은 “구조조정 재원은 추경 예산 등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투입해야 하고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사용하는 것은 책임성과 투명성 확보가 어려우니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일한 여당 의원인 엄용수 의원은 “구조조정은 시장에 맡겨 진행하되 정부가 실업 및 협력업체, 지역경제 대책을 포함한 종합적 구조개혁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며 “공적자금 투입은 불가피하지만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대기업 퍼주기가 돼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박상주 기자 sa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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