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의 히딩크'를 키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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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하얏트 호텔에서는 네덜란드 통상사절단의 축하 만찬이 열렸다. 이런 유의 행사치고는 전례없이 대성황을 이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히딩크가 참석한다고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이다. 헤니프 통상장관은 인사말에서 히딩크는 '메이드 인 네덜란드'로, 네덜란드엔 히딩크 같은 사람이 많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히딩크-. 그는 우리나라를 월드컵 4강까지 오르게 한 주역으로 우리 국민을 한없이 열광케 한 주인공이다. 온 국민은 목이 아프도록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고 환호하며 그의 리더십을 찬양했다.

오죽하면 그의 국적을 바꿔 대통령으로 출마시키자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그래서 그는 지금도 인기가 높고 그가 오는 자리라면 사람들이 모인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히딩크 같은 사람이 없었고 또 지금도 없는 것인가. 대답부터 하자면 지난날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많이 있을 수 있다. 또 많이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난 몇십년을 생각해 보자. 유럽이 2백년, 일본이 1백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를 우리는 불과 40여년 만에 이룩했다. 그것도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이룬 것이다. 이를 두고 세계는 한강의 기적이라 말했다. 이러한 경제력이 우리가 올림픽 4위와 월드컵 4강을 달성한 초석이 된 것이다.

또 산업화에 이어 우리는 이른 시일에 민주화를 이루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너무 과속으로 달린 탓인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맞아 경제가 침몰할 뻔도 했지만 극적으로 빨리 회생하는 것을 보고 세계는 우리를 불사조 같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우리 국민은 그만한 능력이 있는 국민이다. 산업사회의 쌀이라고 하는 D램 반도체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한다.

선박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건조하고 정보사회의 총아로 떠오르는 휴대전화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다. 그리하여 40년 전의 절대빈곤국에서 오늘날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을 이룩해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아시아의 새로운 네 마리 용이라고 일컫는 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의 GDP를 합친 것보다 크다. 이런 일을 누가 했는가.

바로 우리 국민이 해낸 것이다. 태극전사처럼 땀 흘린 수많은 산업역군이 있었고 히딩크처럼 고뇌와 결단을 한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지나간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인 양 마녀사냥에 여념이 없다. 잘한 사람은 없고 감옥에 갈 사람들만 많은 것처럼 여긴다면 옳은 일인가? 평정한 마음으로 골똘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히딩크가 있었고, 또 히딩크 같은 자질을 갖춘 사람은 지금도 곳곳에 있다.

다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고 지도자를 기를 줄 모르는 토양이 수많은 히딩크의 출현을 어렵게 하고 있을 뿐이다. 지도자를 기르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훌륭한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히딩크도 2001년 1월 한국에 부임해 월드컵 시작 직전인 2002년 5월까지 32회의 국제 게임을 치렀지만 결코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프랑스와 체코에는 5대0으로 대패하면서 한때 그의 별명이 '오대영'으로 불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불만과 잡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고 계속 감독 자리에 두고 밀어 주었기에 월드컵 4강의 위업을 달성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도 각 분야에서 시간을 갖고 밀어 주면 많은 히딩크가 나올 수 있다. 당장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해도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격려하면서 서로를 감싸주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

우리 국민은 분명 그만한 자질이 있다. 많은 분야에서 히딩크가 나오는 날 우리나라는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기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히딩크를 찾자. 히딩크를 기르자. 그러면 많은 꿈이 이뤄질 것이다.

김재철 한국무역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