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아탈리 칼럼

당신은 쓸모 있는 사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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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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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소위 현대적이라는 사회를 뒤덮고 있는 진부하고 쓸데없는 것들의 홍수와 또 다른 사회 위로 쏟아져 내리는 포화(砲火)를 비교할 때면, 이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미쳐 돌아가고 있고, 그 의미를 완전히 상실했으며,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고, 이 세상을 존속(存續)과 계몽의 길 위로 복귀시키려 할 때 우리 각자가 던져볼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은 단 하나다. 그 질문은 혁신적이고 단순하다. 단순해서 혁신적이다. 우리는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당신은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행복은 자기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에서
나온 결과가 되어야지
자신의 존재이유가 돼선 안 돼

우리 각자가 약식(略式) 아닌 정식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자고 마음먹는다면, 또 거기에서 정말로 성실하고 꼼꼼한 답을 찾기를 바란다면 일단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난처한 구렁 속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왜, 누구에게, 무엇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가? 도움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는가? 명분 있는 악행은 도움이 되는 것인가?

우선, 꼭 도움이 되어야만 할 것인가? 많은 사람이 이 질문에 본능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그들은 생각한다. 삶은 결국 동물처럼 살아남는 것과 가능한 한 매 순간을 즐기는 것으로 간추려진다고. 달리 말해 우리가 찾아 나서야만 할 단 하나의 실리는 나와 나에게 딸린 이들을 위한 밥벌이를 함으로써 좋은 시간을 최대로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모든 인간이 이 같은 답에 만족한다면, 각자가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것에 안주해 버리고 만다면 그 다음은 어떤 모습일까. 경험으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 반대라 주장했던 사람들이 무색할 만큼 이 세상은 가장 거친 야생 상태와 자연 파괴를 겪게 될 것이다. 안 봐도 알 수 있다. 이미 우리가 날마다 목도하는 장면이니까. 이기주의는 수백만이 한곳에 뭉쳐도 결코 문명으로 이어질 수 없다. 문명의 영속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 필요하다. 구성원들 각자가 무엇인가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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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니, 그렇다면 누구에게 아니면 무엇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가? 자신에게? 이는 적절한 대답이 못 될 것이다. 이 대답이 정당하다면 내가 존재하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도움이 된다는 것도 무의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제 아이들에게 쓸모가 있어야 할까? 아이를 갖지 않으면 모든 존재 이유가 사라지므로 그것도 만족할 만한 대답이 못 된다. 아니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대답도 전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쓸모 있어야 할 의무도 모조리 사라지니까. 다른 말로 하자면 쓸모 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그것을 찾아 나서는 사람 혼자서는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사람과는 별개여야 한다. 그렇기에 혁신적이다. 그러니 이렇게 질문해 보자. 당신은 무엇에 쓸모 있는 사람인가? 자신에게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대답을 내놓아 보자.

물론 나 자신에게도 이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그리고 ‘내가 살려면 내가 필요하지’ 아니면 ‘내가 행복하려면 내가 필요하지’ ‘내 주변이 행복하려면 내가 필요하지’ 같은 너무나 안이한 해결책은 밀어내고, 앞에서 얘기했던 이유들을 찾아내기 위해 이런 생각들을 해본다. 나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나에게 딸려 있지 않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특히 내가 죽고 난 뒤에 살아갈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달리 표현하자면 나는 내가 죽고 난 다음에는, 나 덕분에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의 모든 인간에게 이처럼 순수하게 이타적인 답변을 요구하기는 아주 어렵다. 이기주의를 모아서 나열해 놓는다고 이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듯, 수백만의 이타주의가 모인다고 해서 세상이 이룩되는 것도 아니다. 각자가 모두 뭔가에 쓸모가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인 생각이 되려면 다른 모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든가, 아니면 자연을 보호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뭔가에 도움이 된다는 것 속에서 각자가 자기의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행복은 자기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서 나온 결과가 되어야지, 그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하지도 않고 거저 되는 일도 아니다. 인간의 존속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이 인간 조건의 위대함이고, 이런 것이 또한 분명, 우리가 스스로의 존속 조건을 일구어 내기 어려워하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이다. 이는 결국 우리 문명이 반드시 치러야 할 투쟁이다. 그것이 포화와 눈물의 구덩이 속으로 사라져 가지 않고, 우리 각자의 행동과 다른 사람의 미소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발전해 가기를 원한다면.

◆약력=1943년 알제리 출생. 에콜 폴리테크니크, 에콜 데 민, 시앙스포 파리, 국립행정학교(ENA) 졸업. 파리 도핀대 경제학 박사.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특별보좌관.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총재.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더 나은 미래』 『미래의 물결』 등 65권의 저서.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