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 미술·웅변·주산 등 한꺼번에 시켜|요일별로 학원 보내는 부모 극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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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장민씨<51·한국아동교육연구원장>
[남이 장에 간다고 망건 쓰고 따라간다]는 우리속담이 있다. 주관 없이 무비판적으로 들떠서 밀려가는 것을 꼬집는 말이다.
요즘 일부 학부모들이 조기교육을 내세우며 어린이들을 혹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은 확실히 뭔가 잘못돼 있는 것이다.
유치원이나 학교 외에 학원이다, 교습소다, 또는 도장이다 해서 하루도 쉴 틈이 없는 어린이도 있다.
강남의 고급 아파트 지역에 사는 한 어머니가 아들 자랑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월요일에는 미술실, 화요일은 주산학원·금요일은 웅변학원을 보낸다는 것이다. 사실은 피아노와 속독도 배우도록 해야 할텐데 건강을 생각해 주말은 철저히 쉬도록 한다고 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어린이의 세계는 놀이의 세계다. 어린이 헌장에도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보호해줘야 한다고 돼있다. 과연 이토록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해서야 어린이가 어떻게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일부 부모의 이러한 극성은 인간교육 부재를 드러내주는 것이다. 지식교육에만 급급한 나머지 인격을 형성시키는 인간교육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몰아치지만 말고 한가지를 가르치더라도 적성에 맞추어 즐거운 마음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해야한다. 부모들은 어린이 스스로 재미를 불이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을 어린이 스스로 결정할 틈을 안주는 것이 현실이다. 어머니가 결정하고 아버지가 승인하는 것이 통례다.
유행을 따르다 허욕에 사로잡혀 귀중한 아이들의 잠재력을 진흙 속에 묻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소질과 적성을 제대로 발굴해 그에 알맞은 교육을 시키는 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위하는 길이다.
옆집 아이가 3만 원짜리 피아노 교습을 받는다고 우리아이는 바이올린 교습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머니, 1등과 반장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어머니, 태권도·미술·음악 등 모든 것을 잘해야 경쟁사회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이런 어머니들은 귀하고 보배로운 새싹을 짓밟고 있는 것으로 여겨도 괜찮을 듯 하다.
가정의 장래가 자녀에게 달렸듯이 나라의 장래도 어린이들에게 달려있다. 국가의 바람직한 장래를 위해서도 학부모들이 교육관을 올바르게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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