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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민 칼럼] 멕시코 ‘클라크 게이블’이 강추한 태양의 맛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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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28면

살삐콘 데 뽈뽀

엔칠라다 로하와 치차론

마가리타 클라시카와 망고 마가리타

내가 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은 ‘딱 하나’, 먹거리다. 그 중에서도 술이 유명한 나라가 늘 우선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최고로 꼽았던 이유는 최고의 와인 생산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 그 순위가 바뀌었다. 새로운 강자는 ‘카리브해의 욕망’으로 불리는 멕시코의 칸쿤(Cancun). 창밖으로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 바다와 맞닿은 듯한 인피니트 풀, 곱디고운 모래, 핑크빛 노을….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건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 서비스였다. 칸쿤 지역 대부분의 호텔·리조트에서는 투숙객에게 음식과 음료·주류 일체를 무료로 제공한다. 호텔 레스토랑과 스낵 바, 미니바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 술 좋아하는 나와 남편은 휴가 기간 동안 하루 종일 다양한 음식과 술을 먹고 또 마셨다.


무엇보다 타코 안주와 마가리타 칵테일의 조합이 끝내줬다. 이걸 권한 건 호텔 내 멕시칸 레스토랑 매니저인 디에고였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클라크 게이블을 꼭 빼닮은 그는 “현지에서 맛봐야할 술과 음식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에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미소로 씩 웃으며 타코와 마가리타 칵테일을 내왔다.


타코는 옥수수 가루 반죽을 얇게 부친 또띠아 위에 각종 고기와 채소를 넣어 쌈처럼 싸먹는 멕시코 대중 음식이다. 마가리타는 데킬라와 라임주스·트리플섹(달콤한 리큐르) 등을 섞어 만든 칵테일로 잔 둘레에 흰 소금을 묻혀 내는 게 특징. 1930년대 멕시코의 한 바텐더가 사랑하던 여성을 잊지 못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로맨틱 칵테일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서울에서 타코와 마가리타가 떠오를 때면 우리 부부는 이태원에 있는 식당 ‘돈 차를리(DON CHARLY)’에 간다. 일반적인 미국식 타코(Tex-Mex)가 아닌 정통 멕시코식(Mex-Mex) 타코를 선보이는 곳이다. 가게 이름은 ‘미스터 차를리’라는 뜻. 오너 셰프인 카를로스 몰리나의 영어식 애칭을 땄다.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나 요리를 공부한 그는 스페인 세비야로 건너가 요리사로 일했다. 그때 세비야로 유학 온 한국인 아내를 만났고, 한국에 정착한 부부는 2012년부터 ‘진짜 멕시코 사람이 만드는 멕시코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돈 차를리에서의 시작은 역시나 타코와 마가리타. 오늘의 타코는. 또띠아를 바삭하게 튀긴 토스타다(Tostaditas) 위에 검은 콩과 토마토·양파 ·양상추·문어를 잘게 잘라 라임 즙에 버무린 샐러드, 매콤한 그린살사, 아보카도를 토핑으로 얹어 먹는다.


마가리타는 두 종류가 있다. 데낄라에 라임 즙·트리플섹·블루 큐라소를 넣은 ‘마가리타 클라시카’와 망고가 들어간 ‘망고 마가리타’. 달콤한 맛에 취하는 줄 모르고 먹지만 데낄라가 두 잔이나 들어가기 때문에 은근히 취한다. 잔 윗면에 두른 소금에는 멕시코 고추인 삐끼니 가루와 라임 즙이 곁들여져 맛이 아주 복잡미묘하다.


다음은 엔칠라다 로하(Enchilada Roja). 멕시코식 ‘집밥’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닭고기로 속을 채운 또띠아 롤에 매콤한 토마토소스를 듬뿍 뿌린 뒤 녹인 치즈를 얹고 사워크림과 적양파를 토핑으로 올리면 완성! 매콤한 맛을 좋아하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음식이다.


마지막은 맥주 안주로 좋은 나초인데, 매콤한 살사 소스를 곁들이면 맥주 한두 병은 뚝딱이다. 4000원만 추가하면 ‘치차론(Chicharron)’을 맛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별미다. 멕시코인들의 소울 푸드라 불리는 이 음식은 돼지껍데기를 기름에 튀겨낸 간식으로 입안에 넣고 씹는 순간 ‘아삭’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녹아 없어진다. 칼로리는 낮고, 콜라겐이 풍부해 여성들이 특히 좋아한다. 아보카도를 으깨 양파·토마토 등을 섞은 과카몰레 소스에 찍어 먹으면 최상의 조합이다.


돈 차를리에서는 다육식물 용설란의 수액을 증류한 멕시코 술 테킬라도 21종이나 판매한다. 용설란에 사는 애벌레를 술병에 통째로 넣은 멕시코 술 ‘메스깔(Mezcal)’도 맛볼 수 있는데 이 애벌레가 술잔에 떨어지는 사람에겐 행운이 온다고 알려져 있다. 어느 날, 그 애벌레가 내 술잔으로 떨어진다면 나는 주저없이 칸쿤으로 달려가 바람처럼 술을 먹어 없앨 것이다. 아, 그리운 술의 천국이여! ●


이지민 ?대동여주도(酒) 콘텐트 제작자이자 F&B 전문 홍보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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