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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장 노하우 배워 중동의 지식산업 강국 꿈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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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호 4 면

이란의 젊은이들이 지난달 26일 수도 테헤란 시내 거리에서 기타와 하모니카 등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지난 1월 서방의 제재 해제 후 경제 발전 기대가 커진 시민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AP=뉴시스]

지난 1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제재 해제 조치로 경제 발전의 역사적인 전기를 맞은 이란은 어떤 모습일까? 이란은 어떠한 경제 발전전략을 세우고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 지난달 21~25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과 경제수도라는 이스파한, 문화수도라는 시라즈를 찾아 현장을 취재했다. 이를 통해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하는 이란은 한국과 어떤 경제협력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봤다.

1 이슬람혁명과 이란-이라크전 등에서의 전사자를 추모하는 벽화. 2 이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슬람혁명 지도자 호메이니와 하메네이의 사진. 3 이란 수도 테헤란 시내 전경.  [사진 주강현]

이란은 겉보기로는 여전히 이슬람혁명의 전통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시작된 신정(神政) 일치 통치의 모습은 여전했다. 거리는 물론 정부나 공공건물에는 어김없이 혁명의 주역으로 초대 최고지도자를 지낸 아야톨라 호메이니(1902~89)와 그 후계자인 알리 하메네이(77)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장관 집무실과 상공회의소 회의실, 대학 연구실, 공항 등 어딜 가도 두 지도자의 사진은 쉽게 눈에 띄었다. 반면 국민이 선출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2013년 취임)의 사진은 드물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슬람혁명 직후 제정된 헌법에서 이슬람 시아파 최고성직자가 세속 권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모든 공식 행사는 이슬람 경전인 쿠란의 낭송 방송으로 시작됐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원장 김성귀)이 지난달 23~24일 이스파한과 테헤란에서 개최한 ‘2016 한·이란 비즈니스 포럼’도 물론 같은 순서를 따랐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어느 도시에 가든 거리 곳곳에 젊은이들의 사진이 여러 장 인쇄된 현수막이나 벽화가 걸려 있었다. 사진과 모양은 마을마다 조금씩 달랐다. 이슬람혁명과 이란-이라크전쟁(1980~88)에서 전사한 청년들의 사진이었다. 남녀 구분이 없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이슬람혁명이 주변국으로 파급되지 않도록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하면서 벌어진 전쟁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혁명을 지키기 위해 벌인 이 전쟁도 이슬람혁명의 연장인 셈이다. 몇몇 청년의 사진은 커다랗게 단독으로 걸려 있었다. 파르시(이란어)는 물론 심지어 영어로도 ‘국민 영웅(National Hero)’이라고 적혀 있었다. 무공을 세우고 전사한 군인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이란의 도시는 이슬람혁명의 흔적으로 가득 차 보였다.


“주변과 잘 지내는 게 페르시아의 전통” 테헤란의 한 거리에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의 별 부분을 해골로 바꿔 그린 뒤 줄 부분에 커다랗게 영어로 ‘미국을 타도하라(DOWN WITH THE USA)’, 파르시로 ‘미국에 죽음을’이라고 쓴 초대형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겉모습과는 달리 사람들은 친절했으며 도시들은 평화로웠다. 경제제재 해제 이후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전 세계 주요국 정상들은 앞다퉈 이란을 찾고 있다.


한·이란 비즈니스 포럼의 이란 측 진행자인 이스파한대 국제경제소장인 코마일 타예비 교수는 “주변 사람과 잘 지내고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페르시아의 전통은 이슬람혁명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이란인의 삶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 국민은 국제사회의 제재 해제를 계기로 성실하고 지식을 사랑하는 국민성을 활용해 이란이 지역의 경제·문화·학술 중심국가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테헤란대 기업가정신학과(경영학과에 해당)의 국제담당 전문가인 네다 샤흐미리는 “모르는 사람과도 잘 지내는 이란인의 적극적인 품성이 앞으로 교류 확대 시대를 맞아 빛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래 전략에 대해서도 솔직한 의견을 드러냈다. 타예비 교수는 “한국의 첨단 기술력과 이란의 젊은 청년 두뇌를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한·이란 교류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또 “역사적으로 이란은 야심 있는 나라”라며 “한국을 통해 경제 성장 노하우를 흡수해 중동의 지식기반산업 강국으로 성장하는 게 이란 지식층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란에 투자하면 주변국 시장 진출에도 도움 이란 관계자들은 제재 해제 이후 경제 발전을 낙관하는 모습이었다. 테헤란 샤히드 베헤슈티 대학의 아바스 아랍마자르 교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이란에 투자하면 중동·북아프리카(MENA)와 중앙아시아, 캅카스 지역까지 시장으로 삼을 수 있다”며 “외국인의 이란 투자는 지금이 적기”라고 강조했다. 이란 외국인투자청(OIETAI)의 쿠로시 타허파러 고문은 “이란에 물류 인프라와 정보기술(IT) 등에 투자하겠다는 외국 업체가 몰려오고 있으며 우리는 이들을 원스톱 서비스로 지원할 것”이라며 “투자 결정을 미루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랜 경제제재의 부작용에 대한 고민도 깊었다. 이스파한대 기업가정신학과의 무함마드 바르자니 교수는 “이란의 두뇌 유출이 심각하다”며 “제재 등으로 경제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자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없는 젊은 인재들이 서유럽 등으로 떠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제재 해제 뒤 이들을 이란에 남게 할 IT·생명공학기술(BT) 등 지식기반형 산업의 부흥이 필요하다”며 “더 이상 관광객 상대의 전통 수공업이나 경공업 육성으로는 부흥에 대한 기대를 잠재울 수 없다”고 말했다. 김승호 주이란 한국대사도 “이란은 첨단 산업으로 새로운 경제를 일으킬 시점에 와 있다”며 “한국과 손잡고 경제협력을 진행시켜 나가자”고 했다.


“글로벌 사회와 함께 가는 이란 기대” 일반 테헤란 시민들은 제재 해제 이후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스키 코치(테헤란 주변은 해발 2000m가 넘는 고산지대라 4월 말까지 스키를 탈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남아 있음)로 일하는 모르테자 나자르(65)는 “경제는 물론 사회·문화적으로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는 기대를 밝혔다. 그는 “이제는 라이프 스타일과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제재 해제를 통해 글로벌 사회와 함께 가는 이란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설비가 낡고 용량이 부족해 수시로 정전이 되는데 앞으로 정전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며 “택시 값만 해도 매년 20% 이상 뛰고 주택임대료도 수시로 올라 살기가 힘든데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란의 고대 유적지 페르세폴리스가 있는 시라즈에서 7년째 영어 관광가이드를 하고 있는 모스타파 잔다리(32)는 외국인 관광 붐을 기대했다. 그는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한 팀이 떠나면 일거리가 한 달 뒤에 생길지 두 달 뒤에 생길지 장담을 못했는데 로하니 대통령이 2013년 취임한 후로는 관광객이 늘기 시작해 지금은 당시의 10배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는 “주말이면 페르세폴리스 유적 근처는 호텔 방이 동이 날 정도”라며 “독일·이탈리아·프랑스 등 유럽 관광객이 가장 많이 오고 요즘은 중국 관광객도 자주 접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제재 해제로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려오고 이란 관광 인프라 투자도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몽 같은 한국 드라마 보며 재미 느껴” 이란 테헤란대 대학원에서 기업가정신학을 전공하고 있는 A씨는 “해외 투자가 들어와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과 함께 국내 생산상품의 품질이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란 소비자는 수퍼·약국·화장품가게 등에서 ‘(품질이 좋고 비싼) 외제냐, (품질은 훨씬 떨어지는 값싼) 국산이냐’를 선택해야 했다”며 “앞으로 제대로 된 물건을 쓰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전했다. 특히 “이란에서 생산되지 않는 의약품의 경우 수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값이 많이 뛰었는데 제재가 풀리면서 약값이 이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라즈의 고교생인 알리 레조(19)는 “정부는 반미정책을 펴지만 국민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며 “나는 미국 영화와 음악이 좋으며 ‘주몽’ 같은 한국 드라마에도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를 다니는 민항기 조종사가 되는 게 나의 꿈”이라며 “앞으로 외국 문화를 보다 편안하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비즈니스 포럼을 주최한 김성귀 KMI 원장은 “한국과 이란 간 해운노선 재가동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화했다”고 양국 간 대화의 성과를 전했다. 김 원장은 “박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반다르압바스항 같은 이란의 전략적 물류기지 건설에 한국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해 지역에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은 한창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들은 자신보다 먼저 경제 성장을 경험한 한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테헤란·이스파한·시라즈=채인택 논설위원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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