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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만 기다렸는데…" 미세먼지가 바꾼 도시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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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 3종 경기 동호회 ‘텐언더’의 회장인 박영준(47)씨는 지난 24일 예정된 주말 단체 훈련을 취소했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원래는 동호회 회원 20여 명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과천 서울대공원 인근 도로를 70㎞ 가량 달릴 계획이었다.

이날 오전 수도권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는 ‘매우 나쁨(m³당 151㎍)’수준이었다. 미세먼지 농도가 이 수준으로 2시간 이상 이어지면 미세먼지주의보가 발령된다. 박씨는 “미세먼지 때문에 훈련을 취소한 건 처음”이라며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운동을 할 수 있는 주말만 기다리게 되는데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실내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롤러’를 구입했다는 박씨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밖에서 자전거 타는 것을 자제하고 롤러를 활용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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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는 지름이 10㎛(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이하의 먼지다. 자동차 배기가스 등을 통해 주로 배출되고, 중국의 황사나 심한 스모그 때 국내로 유입되는 일이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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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먼지가 생활 풍속도를 바꿔놓고 있다. 미세 먼지가 기승을 부리면 운동ㆍ현장학습 등 실외 활동이 현저히 줄어든다. 휴대전화에 일기예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미세먼지 주의보를 확인하는 일은 일상이 됐다.

어린이집 교사 김보은(29ㆍ여)씨는 “아이들 야외활동 전에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일은 필수”라면서 “해마다 4월이면 아이들과 놀이터에 가거나 산에 가서 자연관찰 활동을 자주 했는데 올해는 거의 못갔다”고 말했다. 과천 서울대공원 관계자 역시 “화창한 주말에는 일평균 방문객이 5만명에 이르지만 지난 주말인 23ㆍ24일에는 일평균 방문객이 1만4000명에 불과했다”며 “날씨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실내에는 사람들이 몰렸다. 서울 장지동의 한 키즈카페 직원 김모(40·여)씨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평소 매출 대비 50%가 늘어날 정도로 아이들을 데리고 실내를 찾는 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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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예방 상품의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미세먼지가 잦았던 최근 일주일(4월19일~25일) 동안 마스크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배 이상 급증했다.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예전과 달리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관음죽·아레카 야자 등 공기정화식물도 4.2배 판매량이 증가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공기청정기와 텁텁해진 입을 헹궈주는 가글 등 구강청결제의 판매량은 각각 2.3배, 2.4배 증가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의 실시간 베스트상품 20순위 내에도 공기청정기와 마스크, 물티슈 등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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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미세먼지에도 야외활동을 해야하는 사람들은 고충을 토로했다. 서울 길음동 현대백화점 미아점의 한 주차관리요원은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실외 근무 전부터 걱정이 되고 근무 때도 내내 목이 칼칼하다”면서도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항상 마스크를 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야쿠르트 판매원 오모(63ㆍ여)씨 역시 “아무리 미세먼지가 심해 목이 칼칼하고 기침이 나와도 돈을 벌려면 밖에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세먼지가 극성이던 지난 23ㆍ24일 서울 도심을 포함해 전국 10여 곳에서 마라톤 대회가 강행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환경운동연합은 “아무리 건강한 성인이라도 최악의 대기오염 속에서 마라톤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고, 서울 시청 인근에서 마라톤대회 중단과 차량 2부제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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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수도권 경유 차량 줄이자"=서울시는 국내의 미세먼지 중 20%가량은 수도권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경기도와 인천시에서 서울 시내로 진입하는 경유 버스(1756대)에 대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경기도와 인천시에 공해를 유발하는 경유 차량을 줄이자고 제안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10년 이상 운행한 2.5t 이상 경유 차량은 반드시 매연저감장치를 달게 하고 이를 위반하는 차량을 단속해 달라고 두 지자체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시는 2002∼2014년 압축천연가스(CNG) 버스로 시내버스를 모두 교체했다.

채승기ㆍ조한대ㆍ조진형 기자 che@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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