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종인 “낭떠러지서 구해놨더니 문재인 엉뚱한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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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문재인’, 총선 전까지만 해도 선거 결과를 놓고 ‘공동 운동체’라는 평가를 받던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일로다.

22일 회동 이후 ‘각자의 길’ 가나
김 “당신 편 발언 통제하라 했더니
문, 말 안 듣는 친노도 많다고 대답
거기에 대고 내가 뭐라고 하나”

총선 이후 지도체제 문제를 교통정리하지 못해서다. 급기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입에서 문재인 전 대표를 “더 이상 안 본다”는 말까지 나왔다. 2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다. 총선이 끝난 지 11일 만의 일이다.

22일 두 사람은 만찬 회동을 했다. 김 대표가 향후 당 대표를 맡아야 하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회동 이후 양측이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김 대표는 “문 전 대표가 ‘경선에서 나서시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관심이 없다고 했고, 당이 정비를 하려면 현 비대위 체제를 조금 더 가지고 가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당대회를 열어 서로 경쟁하다 보면 (비례대표 공천 순번을 주류 측이 뒤집은) 중앙위원회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데, 그렇게 과거로 돌아가는 식으로 하면 이 당은 희망이 없다고 얘기했다”고 덧붙였다.

문 전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 대표가 ‘합의추대든 경선이든 당권에 욕심이 없다’고 말해 저도 ‘출마하시면 괜히 상처만 받게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합의추대론’은 그래서 사실상 힘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비대위 체제 연장에 대해선 즉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골이 오히려 깊게 파인 양상이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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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사진)와 문재인 전 대표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두 사람은 지난 22일 만찬 회동을 했으나 오히려 회동 후 잡음이 커지고 있다. [중앙포토]

만찬에서 나눴다는 대화의 내용이 서로 조금씩 다른데.
“문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내가 출마하면 상처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더 이상 개인적으로는 문 전 대표를 안 만날 것이다. 믿을 수가 없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려는 것을 구해놨더니 문 전 대표와 친문(親文)이라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엉뚱한 생각들을 한다.”
문 전 대표가 아니라 주변 인사들이 그런 논리를 펴는 것 아닌가.
“별개는 무슨 별개냐. 같은 사람들이지. 그래서 내가 만찬에서도 친노, 즉 당신 편은 당신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문 전 대표가) 청와대 행정관 등을 한 사람은 많지만 자기 말을 안 듣는 친노도 많다더라. 거기에 대고 내가 뭐라고 하나.”
대선 때 문 전 대표를 돕지 않을 생각인가.
“내가 어느 특정인을 위해 하긴 뭐를 하나. 선거를 끝냈으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냉철한 분석도 해보고 해야 하는데(그 사람들은) 결과가 좋으니 그냥 기쁜 거다. 대통령을 하고 싶은 사람이면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문 전 대표는 대선 때 수권비전위원회를 만들어 경제민주화 추진을 위한 역할을 맡아달라는 입장인데.
“대선 후보로 확정된 것도 아닌데 그런 제안이 말이 되나. 특히 기분이 나쁜 게 호남 표 안 나오는 게 나 때문이라며 책임을 돌리는데, 내가 그런 수법을 모를 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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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사진)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두 사람은 지난 22일 만찬 회동을 했으나 오히려 회동 후 잡음이 커지고 있다. [중앙포토]

김 대표는 한때 ‘햇볕정책 수정론’을 제기한 일이 있다. 이를 호남표와 연결해 비판한 인사는 정청래 의원이다.

문 전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김종인 비대위 체제의 유지’ 문제와 관련해 “선거에서 고생한 걸 위로하는 편한 자리에서 나눴던 얘기가 자꾸 (외부로) 나오는 게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 전 대표는 “김 대표가 대선 때까지 역할을 계속 하셔야 한다. 가칭 ‘수권비전위원회’ 등을 맡아서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과 대안을 발전시켜 주신다면 당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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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민주는 오는 7월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다. 전·현직 대표의 갈등기류속에 정해진 일정대로 대표 경선을 하느냐, 아니면 전대를 연기하고 당분간 김 대표의 비대위 체제를 유지할 것이냐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게 됐다.

문 전 대표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친문계로 분류되는 홍영표 의원까지 “계파 싸움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전대를 다소 미루는 안을 토론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당 대표 후보로 꼽히는 김진표 당선자도 이미 “비대위 체제를 연말까지 연장하고 전당대회를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 대표로 나설 후보들이 반대하면 전대는 예정대로 치러야 한다. 전대 출마 의사를 밝힌 송영길 당선자는 “전대 연기는 기득권층의 논리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했다.

김성탁·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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