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올초 검찰 수사 본격화되자 “황사가 폐손상 원인일 수도”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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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11년 정부가 실체를 공식 확인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최대 가해자인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가 “피해자들의 폐 손상은 봄철 황사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검찰에 피력한 것으로 24일 드러났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유리한 보고서만 뽑아 제출 의혹도
검찰, 신현우 전 대표 등 금주 소환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에 따르면 옥시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지난 1월 이후 수사팀에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77쪽 분량의 의견서를 냈다. 질본은 당시 “원인 모를 영·유아 및 임산부들의 폐질환 사망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옥시가 최근 제출한 자료에는 “폐질환은 유전·음주·흡연 등 복합적인 요소로 인해 발생할 수 있어 질본 역학조사 결과가 전적으로 맞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 담겼다. “폐질환은 발생 원인이 다양한 질환임에도 보건 당국의 실험에선 제3의 위험인자를 배제하지 않아 문제가 있다. 정부 역학조사 결과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특히 옥시는 “봄철 황사가 폐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거나 “가습기 자체에서 번식한 세균이 인체 폐 손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 의견서는 현재 법원에서 진행 중인 민사사건 담당 재판부에도 보내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은 옥시 측 의견서는 단순 예측에 근거한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국내 화학·의학·약학 분야 권위자 등 20여 명의 집단토론에서 질본의 역학조사 결과는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났다”며 “옥시의 의견서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검찰은 옥시가 2011년 질본의 역학조사 결과 발표를 반박하려고 서울대·호서대·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에 의뢰해 받은 실험 결과 가운데 회사에 유리한 것만을 발췌해 검찰에 제출한 사실도 파악했다. 검찰 조사 결과 옥시는 서울대 실험 중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PHMG)가 태아에 유해하다는 결론이 나온 임신생쥐 실험 데이터는 무시하고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일부 결과만을 인정했다. 질본의 조사 결과와 동일한 결론이 나온 KCL의 실험 데이터는 아예 받지도 않았다. 검찰은 이와 관련한 자료를 모두 확보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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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이번 주부터 2001년 가습기 살균제 출시 당시 옥시 대표이사였던 신현우(68)씨 등 사건의 핵심 당사자들을 소환해 조사한다. 검찰은 신 전 대표 등을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의 위험성을 알게 된 시점 및 영국 본사에서 내린 조치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주부터 소환조사를 받는 인사들 상당수는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말했다.

한편 롯데마트는 지난 22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보상전담팀을 꾸렸다고 24일 밝혔다. 지난 18일 사과 및 보상 기자회견을 연 지 나흘 만이다. 피해보상전담팀은 김창용 경영지원부문장 등 19명으로 구성됐다.

오이석·이현택 기자 oh.i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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