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0여 년 공방 끝에 220조원 피해 배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가장 빈번하게 이뤄진 곳은 미국이다. 하지만 담배회사의 책임이 인정되기까지 40여 년이 걸렸다. 1950년대 폐암으로 사망한 흡연 피해자 유족들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처음으로 소송을 제기한 이후 92년까지 수백 건의 소송이 이어졌지만 모두 담배회사의 승소로 판결 났다. 흡연이 질병을 유발한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고, 주로 개인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벌이는 소송이어서 법정 싸움이 쉽지 않았다.

1992년까지는 피해자가 모두 패소
담배사 연구원들 양심선언 뒤 반전
일본·프랑스선 흡연자 책임 간주

하지만 90년대 중반 들어 분위기가 반전됐다. 94년 담배회사 연구원들이 양심선언을 하면서 담배의 위해성과 중독성 관련 내부 보고서들이 공개되고 담배회사가 이를 은폐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소송 판도가 바뀐 것이다. 이후 미시시피 주정부를 시작으로 주정부나 시정부 등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줄소송을 벌였고 98년 46개 주정부가 필립모리스 등 4대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의료비 변상 청구 소송에서 2060억 달러(약 220조원)의 배상액을 이끌어냈다.

캐나다는 정부 차원에서 흡연 피해 배상 법률을 제정하면서 소송전에 뛰어든 사례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주정부에 담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한편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걸 입증할 책임을 담배회사에 지우는 내용의 ‘담배 손해 및 치료비배상법’을 만들었으며 합헌 결정을 받아냈다. 이 법을 바탕으로 온타리오·퀘벡 등 다른 주에서도 주법을 제정했고 관련 소송이 이어졌다. 지난해 퀘벡주에서는 담배회사 3곳에 156억 캐나다달러(약 13조8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과 프랑스, 독일 등에선 아직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주는 추세다. 흡연을 개인 자유의사로 판단해 흡연에 따른 피해는 흡연자 책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한국의 대법원 격인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6년 2월 폐암 환자 6명이 일본담배회사(JT)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담배회사의 책임이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프랑스 최고법원도 2003년 하루 담배 두 갑을 피우다 폐암에 걸려 숨진 리샤르 구르랭의 유족이 담배회사 알타디스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2003년 볼프강 하이네라는 50대 남성이 담배회사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독일 법원은 건강 악화와 흡연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