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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아 너만의 아름다움을 찾아라”…가정법원 그룹홈 찾은 발레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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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의 한 청소년 보호센터를 찾은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은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서 “발레교육를 통해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사진=김현동 기자]

"저도 안아주세요."

지난 21일 오후 서울의 한 소년보호치료시설, 국립발레단 강수진(49ㆍ여) 단장의 깜짝 방문에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너도 나도 강 단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국립발레단이 이달부터 매주 금요일 발레교실을 열고 있는 6호 시설에 강 단장이 여상훈(60ㆍ사법연수원 13기) 서울가정법원장 등 소년부 판사들과 함께 직접 찾아 온 것이다. 47명 모두를 번갈아 안아 준 강 단장은 “왜 저렇게 안아달라는지 알아요. 사랑이 필요해서죠”라고 말했다.

“힘든 순간은 없었나요.”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샛별(가명ㆍ17)이가 던진 질문이었다.

“내 인생도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었어요. 쉽지 않지만 겁내진 마세요. 돌아가지 말고 직진해서 닫힌 문을 여세요. 그러면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후회 없는 삶이 될 거에요. 샛별이와 똑같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어요. 샛별이만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세요.”

강 단장은 이날 보호소년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해서 여기까지 온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비행이 느는 것에 대해 강 단장은 "‘밖에서 뛰노는 문화’에서 ‘앉아서 노는 문화’로 바뀐 탓도 크다"고 지적했다. 1시간여 동안 이어진 아이들과의 뜨거운 만남이 끝난 뒤 강 단 장은 본지에 따로 시간을 냈다.

다른 일정도 많을텐데 서울가정법원과 손을 잡게 된 이유는
"국립발레단 공연 준비가 한창이다. 출근하면 ‘세레나데’ ‘봄의 제전’ 같은 작품을 함께 연습하는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다. 지난해 12월 "보호소년들에게 발레를 가르쳐 달라"는 가정법원의 제안을 받았다. 힘든 청소년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예전부터 있었다. 발레로 청소년들이 육체적ㆍ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게 도울 수 있어 기쁘다."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해 '여기'오게 된 것이라고 했는데.
"각자 사연이 있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했던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운동장에서 축구도 하고 고무줄 놀이도 했는데 요즘에는 전부 컴퓨터 앞에 앉아 인스턴트 음식을 즐기지 않나. 몸 안에 있는 에너지를 소모하고 자기표현을 하는 게 중요한 나이에 그러지 못해 몸에 독소가 쌓인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에 맞는 탈출구를 찾아줘야 한다. 발레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나는 탈출구를 몸의 움직임, 연습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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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절을 어떻게 이겨냈나
" ‘고생없는 행복은 없다’고 하지 않나. 누구든지 고달프다. 나도 지금은 사람들이 알아 주는 유명인이 됐지만 내 인생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반복이었다. 원래 꿈도 발레리나가 아녔다. 중2 때 발레 선생님이 예뻐 무작정 따라하기 시작한 거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계속하다보니 몸을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졌다. 탈출구를 발레에서 찾은 것이다. 몰두하다 보니 발레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치유됐고 행복해졌다. 인생을 살면서 고생이 없는 삶을 산다면 인생을 헛산 것이다. 내 발이 부러져도 발레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 이 느낌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47명 아이를 전부 껴안아 주었는데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스킨십을 좋아한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다 껴안는다. 중 3 때 해외로 나가 결핍증ㆍ우울증 걸려봐서 사람에게 받는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스킨십은 포근한 보호막 같다. 아이들이 내가 안아주길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도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킨십은 사람으로서 ‘살아있다는 신호’다. 요즘엔 로봇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들을 한다지만 스킨십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발레도 스킨십이 많은 운동이다. 발레는 어떤 장점이 있나?
"물론이다. 발레는 만날 스킨십을 한다. 사실 요즘 사람들이 굉장히 계산적이고 차가운데 발레를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인지 몰라도 발레를 하는 사람들은 순수하다. 또 발레를 하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그 순간에 몰입해야 하기 때문에 잡생각을 할 수가 없다. 일반 운동과 달리 발레는 움직임에 혼이 들어가야 하고, 거기에 음악을 들으며 내 몸을 컨트롤해야 하기 때문에 발레는 종합예술 그 자체다. 이미 브라질·스웨덴·핀란드 등에선 치유를 목적으로 발레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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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단장은 "아이들을 도우러 왔는데 오히려 내가 행복을 얻어 돌아간다"며 "이 곳 선생님들의 조건 없는 사랑을 때문에 아이들이 매우 밝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강 단장은 "이런 시설들이 꾸준히 유지되고 늘어날 수 있게 정부차원에서 도움을 주면 좋겠다. 힘 닿는 대로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강 단장이 찾은 ‘6호 시설‘ 은 소년보호재판에서 소년법상 6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머무는 곳이다. 6호 처분은 소년원에 보낼 만큼 비행이 심하진 않았지만 보호자가 없거나 가출 위험이 높은 아이들에게 내려진다. 법원이 아동복지전문기관에 위탁운영하고 있는 전국 15개 6호 시설은 이미 포화상태지만 예산이 부족해 늘리지 못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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