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보는책 교수가 못보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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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월의 흐름이란 참으로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우리 안방의 TV에서 소련민요가 흘러나오고 얼음위에서 춤추는 공산주의 나라젊은이들의 아름답고 발랄한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제소련이나 중공같은 공산주의 국가들과도 우편의 교환이 가능해졌며,서울의 올림픽도 그쪽 선수들이 참가할것이 확실시 된다니 우리가 자유롭게 그 세계에 여행을 갈수 있는 날도멀지 않은듯 하다. 실제로 우리국민가운데서도 공산주의 세계를 방문한 경험을가진 사람들이 이제 상당하며 공산권으로의 경제적 진출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 과제인가률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있는 현실이고, 그 현실은 이념적 장벽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급속히 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무시 못할 현실이 있다. 북한의 공산체제에 대한 경계를 골자로하는 안보체제및 교조적 반공을 기반으로하는 이념교육과 정보통제가 그것이다. 아직도 반공은 우리의 도덕과 윤리교묵 과정의 핵심으로 남아 있으며, 공산주의에 관계되는 문헌들은 특별히 취급인가를 받은 사람들외에는 공개될수 없는 것으로 되어있다. 특별한 기관이외에는 공산권에서 간행된 자료들을 공식으로 통관시켜 입수할수가 없으며 문공부는 막대한 예산과 인적 자윈을 소모하며 국내외 간행물들의 불온성 여부를 전문가들에게 의뢰해서 가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불온간행물 취급인가를 가지고있는 도서관이나 자료실들도 정부기관에 부설된 자료실까지를 포함해서 관계당국의 점검을 받게되어 있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대학이나 그밖의 연구기관들은 공산주의 사회에 관한 강의나 연구를 지원하기를 꺼릴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 분야는 학문적으로 황무지의 상태를 그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말고도 우리에게는 또 세번째의 현실이 있다 그것은 비단 마르크스주의만이 아니라 모든 평등주의와 이론이나 이념에대해 젊은세대가 가지는 비상한관심과 통일에 대한 염원이며, 그러한 관심과 열의를 동원 하여 수행되고 있는 여러가지 연구와 계몽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앞서 지적된 여러가지 제약 때문에 대체로 합법과 불법의 회색지대에서 이루어질수 밖에 없으며,이른바 지하서클의 활동이라는것도 크게 보아 이 범주에 속한다.
이러한 활동의 특징은 그 관심이 구체적 현실에 대한 조명보다도 이론적 탐구에 기울고,지적 호기심 보다는 인간 해방과평등사회의 실현을 위한 실천적의지를 동기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세계에서는 불온으로 낙인찍힌 자료가 널리 보급되고 있으며 그러한 자료들이 담고있는 내용이 공개적 토론이나 검토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마저 나타난다.
공산국가들의 환심을 사서 경제적 이익을 도모해보겠다는 우리의 「실리주의외교」 새로 접촉하게 되는 나라들에 대한 풍부가고 올바른 이해와 지식의 축적을 불가능하게 하는 경직된 안보와 교육정책, 공산주의의 어려운 현실보다는 이론이 제시하는 이상향에 매달리고자하는 우리사회 깊숙이서부터 치솟아 올라오고 있는 평등에 대한 갈구-이세가지의 추세가 서로사이에 절충이나 통합이 없이 평행선을 그으며 지속된다면 우리는 어떠한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 이제한번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세상에서 아무리 자유로운 나라라도 국가안보를 위한 이념교육이나 정보통제를 전혀 배제할수는 없다.그러나 그러한 교육이나 통제는 궁극적 목표달성과 관련해서 그 타당성이 입증되어야 하며 실현 가능성이 있고 일관성있는 정책이라야 된다. 예를 들어 소련같은 나라에서는 모든 대중매체가 국가기관에 의해 운영되고 국민의 외국여행이나 간행물들의 반입이 엄격하게 통제될뿐더러 타자기가 아직도 귀한물건이고 인쇄시설이나 복사기는 개인이 접근 할수 없게 되어있기 때문에 철저한 언론및 정보의 통제가 이뤄질수 있다.
그러니 우리와같이 외국여행이 자유롭고 복사기나 인쇄시설이 흔한 나라에서 간행물을 통제한다는 것은 우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따라서 현실감각이 결여된 교조적 이념교육은 역기능밖에 자아내지 못한다.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쉽게 돌려볼수 있는 책을 교수는 우체국에서 몰수당하는 이 모순을 언제까지 그대로 둘것이가.
해방을 맞은지도 이제 40년. 나라로서도 성숙할만한 나이이고 민주주의가 공산주의의 반대어인양 믿어야 했던 시기는 지났다.
우리는 이제 왜 어떤 나라들은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게 되그었으며, 왜 우리는 반대하는가를 현실적으로 설득력있게 설명할수있어야하며, 그보다도 마르크스주의고 자유주의고 어떠한 사상체계에서고 우리가 취해야할 장점은 무엇이고 피해야할 단점은 무엇인가를 이야기 할수 있어야한다.
이제 또 우리는 민족이 다르고 국가이념이 다른 소련이나 중공과는 스포츠 외교가 시작되었느데 북한의 동포들과는 왜 서신교환조차 불가능한가를 설명할수 있어야 하며, 어려운 설명을 찾는 과정에서 현실을 쉽게 설명할수있는. 현실로 개조할수 있는 의지와 방법을 발견할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새로이 접촉을 가지게되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술책에 넘어가지 않고 우리의 이익을 효율적으로 추구하기위해서도,공산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리국민들의 여러가지 환상을수정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공산국가들의 역사적 배경과 현실을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며 실속없는 자학이라고 밖에 볼수 없는 지금까지의 형식주의적 이념교육이나 통제정책을 과감히 수정해야 될때가 왔다고 본다. 이인호<서울대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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