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가말하는 나의인생 나의건강|황욱씨<87·서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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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나는 인생을 단조롭고 평범하게 보냈어요. 그저 책읽고, 글씨쓰고, 농사짓고, 활쏘고, 가야금을 타고, 난초를 가꾸면서시조 읊고 살았지요』
지난 20일부터 롯데미술관에서 「미수전일을 갖고있는 석전황욱옹(전주시평화동1가405의16).
1898년생으로 올해미수(88세)를 맞는 서예가.
우리나라에서 서화가가 미수전을 열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당 김은호, 심향 박승무화백이 88세까진 살았지만 미수전을 갖지는 못했다.
새벽에 일어나, 전주 다가산을 산책하고 약수를 마시는 일로 일과를 시작한다.
회갑때쯤엔 수전증이 생겨 악필법을 개발, 붓대를 손바닥 전체로 거머쥐면서도 서예에 계속 정진해왔다.
그나마 요즈막에는 오른손이 너무 떨려 왼손 악필로 글씨를 쓴다.
그래서 이번 미수전에 내놓은 50여점의 작품중 40점이 좌수악필이다.
『글씨를 쓰려면 마음을 가라앉혀야 돼요. 마음을 편하게 가지는것이 서예하는 사람의 가본정신이지요. 사물을 정관해야 서도를 얻을수 있음니다』 황옹은 인생도 건강도 「마음」에 달렸다고 「정심」 을 강조한다.
또한 황옹은 일생동안 인초를 가꾸고 완가해온 난전문가. 그러니 마음이 청초하지 않을수 없다는 얘기다. 『내가 젊었을때 팔씨름해서 누구한테도 져본적이 없어요』
80평생을 글씨만 썼으니 손힘이 센것은 당연한 일-.
게다가 궁도까지 익러 쌀1가마쯤은 거뜬히 들어올렸다는것.
한일합방의 비운을 되새기며 금강산에 들어가서 만폭동골짜기에서만 흐르는 검정물을 떠다 바위위에 글씨를 쓰고, 절간 마루바닥에 맹물로 운필, 필력을 길러 90을 앞둔 요즈음도 떨리는것말고는 팔에 힘이 붙어있다는 설명이다.
황옹은 매일 육회이 반주를곁들이는 식사를 하고있다.
송섭·송순·송실주를 담가놓고 손님(빈)도 맞고, 약주로 외복도하고 있다.
생선회도 즐거든다는것.
한마디로 요약하면 황옹의 건강비법은 청정심.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고 새녁에 산에 올라 약수를 마시는 것이다.
청수로 장운동을 시키고 나서는 시조를 읊는다.
소리를 크게내서 시조를 읊으면 호흡운동도 되고 아침밥맛도 꿀맛같다는 것.
『여가에 가야금을 타면 마음이 한결 즐거워진다』며 황옹은 천진스럽게 웃는다.
조선시대 선비의 마지막 맥을 잇는 석전 황욱옹은 육예(예·악·사·어·서·수)를 익힌 딸깍발이-.
(글 이규일기자 사진 양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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