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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화장실 들락날락, 과민성 장질환 탓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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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호 24면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무역회사에 다니는 김모(32·남)씨는 오늘도 설사로 아침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설사를 하는데 화장실 가기 전엔 배가 꼬이듯이 아프다가 다녀오고 나선 통증이 사라진다. 회식에서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화장실에 가느라 지각하기 일쑤다. 가끔 심한 날엔 출근하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아침에 우유라도 한 잔 마시고 싶지만 설사가 날까봐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설사를 자주 하지만 잦은 회식 때문인지 체중은 오히려 느는 것 같다. 얼마 전 사장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발표 준비를 하던 김씨는 갑작스런 설사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다 오후가 돼서야 겨우 진정됐다. 심각한 병이 있는 게 아닐까 걱정돼 병원에서 상부위장관 내시경과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봤다. 하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고 과민성 장증후군이 의심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씨는 과음과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음식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설사의 기간이 2주를 넘지 않으면 급성설사, 3~4주가 넘어가면 만성설사라고 부른다. 급성설사의 가장 흔한 원인은 배탈이다. 음식물·음료수·식기 등에 있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가서 감염을 일으킬 때 나타난다. 이런 급성 감염성 설사는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는데 탈수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어린이나 노약자는 쉽게 탈수될 수 있어 반드시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만성설사의 가장 흔한 원인은 과민성 장증후군으로 대표적인 기능성 장질환이다. 기능성 질환은 특별한 병이 없는데도 발생하는 질환을 말한다. 김씨처럼 본인은 많이 불편하지만 검사에서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설사는 주로 오전에 많이 하고 오후가 되면 잦아드는 경우가 많다. 수면 중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고 혈변이나 체중 감소도 드물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거나 특정 음식을 먹고 나서 증상이 악화된다면 과민성 장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야간 설사·체중 감소·혈변·발열·관절통 등의 증상까지 있다면 다른 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젊고 평소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전형적인 과민성 장증후군 증상 때문에 당장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과민성 장증후군 환자수는 2015년 기준 154만 7761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질환으로 불편을 겪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장 운동 이상, 예민한 장 감각, 신체적·정신적 요인, 감염 후 지나친 면역 활성, 세로토닌 호르몬 조절 이상, 소장세균 과다 증식, 유전 등이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측된다.


과민성 장증후군은 식이요법·약물요법·운동요법 등으로 치료한다. 우유를 먹고 나서 증상이 심하다면 유당을 제거한 우유를 마시는 것이 좋다. 식이요법은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음식일지를 작성해 증상을 악화시키는 음식을 피하면 증상이 개선되기도 한다. 대부분 증상이 호전됐다가 악화되기를 반복하지만 심각한 질환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적다.


중견기업 임원인 박모(52·남)씨는 4개월 전부터 시작된 설사 때문에 괴롭다. 처음엔 하루에 한두 번 묽은 변을 보는 정도였는데 점차 증상이 심해져 지금은 하루에 다섯 번 이상 설사를 한다. 설사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회의를 하다가도 화장실에 가느라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체중도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4개월 동안 5kg 정도 줄었다.


최근에는 대변에 약간 피가 비치는 것 같다. 덜컥 겁이 난 박씨는 소화기내과를 찾아 내시경 검사 등을 받았다. 검사 결과 항문에 가까운 대장 부위에서 궤양성 대장염이 발견됐다. 김씨는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술을 끊고 식이 조절을 시작했다. 차츰 혈변이 줄고 화장실에 가는 횟수도 하루에 2~3번으로 줄었다.


만성설사는 심각한 질환의 신호이기도 하다. 과민성 장증후군 같은 기능성 질환이 아닌 기질적 질환이 의심될 때다. 기질적 질환은 내시경검사·조직검사·대변검사·영상의학검사 등에서 이상이 발견되는 경우를 말한다. 궤양성 대장염·크론병 같은 만성 염증성 장질환과 결핵균으로 인한 장결핵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질적 질환은 특히 체중 감소, 혈변, 잠혈검사 양성 반응, 빈혈, 갑작스런 배변습관 변화, 야간 설사, 발열 등의 경고 증상이 나타날 때 의심해야 한다. 국내의 경우 45~50세부터 대장암 발생률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이 연령대부터는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최근 염증성 장질환 환자가 급격히 느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궤양성 대장염 환자수는 2011년 2만8830명에서 2015년 3만5623명으로 23.6% 늘었다. 이중 30~50대 환자수는 2만2109명(2015년)으로 62.1%를 차지한다.


크론병은 젊은 남성 환자수가 두드러지게 늘어나고 있다. 전체 환자는 2011년 1만3920명에서 2015년 1만8332명으로 31.7% 증가했다. 이중 남성이 여성보다 2배 많다. 특히 10~30대 남성 환자는 9060명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이 연령대의 남성 환자는 4년새 1.5배 늘었다.


과민성 장증후군과 마찬가지로 염증성 장질환의 원인은 정확치 않다. 유전적·환경적 요인, 장내 미생물 등이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궤양성 대장염은 주로 대장에만 발생하고 장이 음식물과 맞닿아 있는 점막층이나 바로 아래층인 점막하층에 주로 염증이 생긴다. 반면 크론병은 대장을 비롯해 소장이나 다른 위장관에도 만성적인 염증이 나타난다. 염증이 장관 전체 층에 발생하기 때문에 장과 장, 장과 피부 사이 샛길이 뚫리는 누공, 장이 좁아져 음식물이 통과하기 어려워지는 협착 등이 생긴다. 특히 절반에 가까운 환자는 항문 주위 농양, 항문이 갈라지는 치루 같은 질환을 겪는다.


염증성 장질환은 주로 10~20대에 발생하지만 40~50대에 처음 발병하는 경우도 많다. 과거에는 치료가 쉽지 않은 난치성 질환이었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치료제들이 많이 개발돼 이전보다 훨씬 좋은 치료 성적을 보이고 있다. 약물치료에는 항염증제·부신피질호르몬제·면역억제제·항생제·생물학적 제제 등이 쓰인다. 수술은 약물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거나 장 협착·폐쇄·천공·누공 등 합병증이 발생하면 고려하게 된다. 식이요법은 먹었을 때 증상이 악화되는 음식을 피하는 방법을 권한다. 음식을 가려먹기 보다는 충분한 영양을 얻을 수 있는 균형 잡힌 식사가 중요하다. 증상이 심할 때는 기름진 음식이나 지나치게 맵고 짠 음식, 음주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크론병 환자는 담배를 끊는 것이 필수다.


이보인 객원 의학전문기자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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