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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행진 브라질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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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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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마 호세프(69) 브라질 대통령.

국내총생산(GDP) 세계 7위의 브라질이 불안하다. 중앙은행이 올해 성장률을 –3.5%로 전망할 정도다. 87%의 높은 지지율 속에 퇴임했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1·2003~2010년 재임) 전 대통령이 부패 스캔들에 휩싸인 가운데 지우마 호세프(69) 대통령도 탄핵 위기에 몰렸다. 지카 바이러스까지 가세해 오는 8월5~21일 열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흥행도 안개 속이다.

브라질은 온갖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뚝심의 나라다. 1500년 포르투갈인이 들어오면서 시작된 이 나라의 근·현대사는 기네스북에 오르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의 온갖 기묘한 사건으로 가득하다.

가장 놀라운 것이 식민지 중 유일하게 본국 수도를 유치했다는 점이다. 1808년 영국의 동맹이던 포르투갈 왕국은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가 침공해오자 수도를 리스본에서 리우데자네이루로 임시 이전했다. 당시 군주는 정신질환을 앓던 마리아 1세(1734~1816, 재위 1777~1816) 여왕이었는데 아들 주앙(1767~1826)이 1799년부터 섭정 왕자로서 통치하고 있었다.

주앙은 영국이 나폴레옹을 물리치자 귀환했지만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하자 또 다시 대서양을 건넜다. 1815년 아예 나라 이름을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베스 연합왕국’으로 바꾸고 리우데자네이루를 정식 수도로 삼았다.(알가르베스는 포르투갈 남부지방) 브라질은 식민지가 아닌 연합왕국의 중심지가 됐다. 주앙은 1816년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브라질에서 주앙 6세로 즉위했다.

주앙 6세는 1820년 본국에서 자유주의자 혁명이 일어나자 돌아가서 이를 진압했다. 뒤에 남아 브라질 섭정을 맡은 아들 페드루는 1822년 독립을 선언하고 브라질 제국을 세워 초대 황제에 올랐다. 부왕과 달리 자유주의를 옹호했던 그는 의회를 만들고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였으며 1824년 헌법도 반포했다. 브라질은 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군주국으로 독립한 것은 물론 ‘제국’이라는 이름을 붙인 유일한 나라가 됐다. 1825년 주앙 6세도 독립을 승인했다.

브라질 제국은 2대 69년간 유지되다 1889년 군사쿠데타로 무너져 ‘브라질 합중공화국(Republic of the United States of Brazil)’으로 바뀌었다.(1967년부터는 브라질 연방공화국(Federative Republic of Brazil)) 남미를 괴롭힌 쿠데타와 군부 독재의 시작이다.

193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제툴리우 바르가스(1882~1954)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30~45년 대통령을 지내면서 경제 성장을 이뤄 인기가 높았으며 축구로 국민 통합을 시도했다. 35년 공산 쿠데타, 38년 파시스트 쿠데타 기도를 물리쳤다. 좌우 모두 그에 맞선 셈이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말처럼 45년 또 다른 쿠데타로 밀려났다.

하지만, 50년 최초로 치러진 민주 선거에서 민선 1호 대통령에 당선했다. 54년 경제난과 측근 비리로 사임 압박을 받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브라질 역사만큼 바르가스의 삶도 극적이다.

64년 또 쿠데타가 발생해 카스텔로 브랑코 장군이 집권했지만 무능·비도덕의 군부 독재는 국민의 외면 속에 무너지고 85년 민정 이양이 이뤄졌다. 2003년 노동자 출신의 룰라가 첫 좌파 대통령에 올라 경제 부흥을 이뤘다. 2011년부터는 후계자인 호세프가 이끌고 있다. 브라질 역사는 언제나 혼란스러웠지만 국민은 항상 이를 극복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채인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