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 “해외 본사 둬도 국내사 지분 80% 넘으면 과세 강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사상 최대의 조세회피 의혹을 폭로한 자료 ‘파나마 페이퍼’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협회(FIFA) 신임 회장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 정보국장인 셰이크 카말 아드함, 대만 총통 당선인인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주석의 오빠 등이 조세회피 자료의 출처인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의 고객 명단에 포함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이런 가운데 미국·영국·인도 등 국가에선 조세회피 방지 대책을 서둘러 마련하고 있다.

기사 이미지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기업 간주해 세금 동일 적용
자회사 대출 이자 세금공제도 없애
오바마 “법인세 개혁 의회 협조를”

FIFA 새 회장, 차이잉원 오빠도
‘모색 폰세카’ 명단 추가로 드러나

BBC 등 외신은 지난 2월 취임한 인판티노가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된 두 명의 사업가와 계약을 맺은 적이 있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파나마 페이퍼에 따르면 인판티노는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법무서비스 국장으로 일하던 2006년 UEFA 챔피언스리그 TV중계권을 약 3배 넘는 가격에 팔아 수익을 챙겼다.

차이잉원 당선인의 오빠 차이잉양(蔡瀛陽)도 파나마 페이퍼에 등장했다. 대만중앙통신(CNA)는 차이잉양이 2006년 ‘모색 폰세카’를 통해 ‘코피 리미티드(KOPPIE LIMITED)’라는 회사를 설립했다고 6일 전했다.

기사 이미지

미국 재무부는 4일부터 강화된 조세회피 규정의 시행에 들어갔다. 본사가 해외에 있는 기업도 미국 기업의 지분 비율이 60% 이상이면 미국 조세 규정을 일부 적용하고, 지분 비율이 80% 이상일 경우엔 미국 기업으로 간주해 동일하게 세금을 부과한다. 또 해외 본사가 미국 자회사에 대출을 해줄 때 그 이자에 부여됐던 세금공제 혜택이 철폐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5일 “조세회피를 막기 위한 법인세 개혁에 의회가 협조해주길 바란다”며 법인세 개혁의지를 내비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높은 법인세율을 피하고자 본사를 세율이 낮은 외국으로 이전하는 ‘세금 바꿔치기(inversion·인버전)’를 미국 조세 시스템의 가장 은밀한 구멍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영국에선 영국 조세법을 따르지 않고 조세회피를 용인하는 영국의 해외 영토에 대해 정부가 직접 통치(direct rule)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는 5일 BBC 인터뷰에서 “해외 영토는 자치령이기 이전에 영국령이다. 그들도 마땅히 영국의 조세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2009년에도 영국령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정부가 부정부패로 얼룩지자 자치권을 빼앗았다가 2012년 새 정부를 구성한 뒤에 돌려준 적이 있다.

기사 이미지

캐머런(左), 귄뢰이그손(右)

진상조사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5일 파난마 페이퍼에 이름이 오른 다비드 귄뢰이그손 아이슬란드 총리가 사임한 데 이어 영국에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여론 공세에 시달렸다. 2010년 사망한 선친 이안 캐머런이 조세회피처인 바하마에 회사를 설립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4일 연설에서 “퇴임한 대법원 판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파나마 페이퍼엔 샤리프 총리의 자녀 세 명의 이름이 올랐다. 국민배우 아미타브 밧찬 등 유명인을 포함해 500명의 명단이 공개된 인도에선 아룬 자이틀리 재무부 장관이 주도하는 정부 특별조사팀이 출범했다. 프랑스·스페인에서도 파나마 페이퍼에 언급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4일부터 대대적인 수사가 벌어졌다.

◆모색 폰세카 “우리는 해킹 피해자”=파나마 페이퍼의 출처인 파나마 대형 로펌 ‘모색 폰세카’는 1986년 변호사 라몬 폰세카와 위르겐 모색의 법률회사가 합병하면서 만들어졌다. 창립자 중 한 명인 모색은 독일 바이에른주의 작은 마을 퓌르트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나치 친위대 ‘바펜SS’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숨어 지내는 나치 대원들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팔아넘긴 스파이 일을 했다.

모색은 가족과 함께 파나마로 이사해 그곳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또 다른 창립자 폰세카는 파나마 대학과 런던 정경대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유럽본부에서 6년 간 근무했다. 재직 당시 역외 기업 설립사업에 대한 얘기를 접하면서 1977년 유엔을 그만두고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집권당 파나메니스타의 당 대표를 역임하고 대통령실 자문으로도 활동하는 등 파나마의 유력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다. 여러 편의 소설과 희곡을 펴내 파나마의 유명 문학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모색과 폰세카는 합병 후 승승장구해 현재 파나마의 최상류 사회에 진입했다고 ICIJ는 전했다. 모색 폰세카 측은 “파나마 페이퍼 유출은 외부 해킹에 의한 것이며, 우리는 해킹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