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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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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홍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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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홍
사회부문 차장

“인생에 낙이 없다.”

주변에서 참 많이 듣는 말이다. 잘나가든 못나가든, 40~50대 중년이든 20대 청년이든 너나 할 것 없이 입에 달고 산다. 사람의 얼굴엔 마음속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웬만해선 웃는 얼굴을 찾기가 쉽지 않다. 판에 박힌 무표정에 약간은 지친 듯한 모습으로 서로를 대할 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행복은 매우 낯선 단어가 돼 버렸다.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50대 중견기업 사장이 넋두리를 했다. “열심히 일하고 경쟁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왜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걸까.” 위만 쳐다보며 달려온 그에게 취미라곤 음주와 흡연이 전부였다. 집에 가도 가족은 언제나 남 같고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하다고 했다.

20~30대는 어떤가. 온갖 스펙을 쌓아 대학에 들어가도 그게 끝이 아니다. 취업에, 결혼에, 생존을 위해 전력투구해야 하는 그들에게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은 언감생심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샐러리맨들도 마찬가지다. 직장·가정·건강 등 공 3~4개씩은 떨어뜨리지 않고 끊임없이 돌려야 하는 저글러의 삶에서 행복은 사치인지도 모른다.

수치로도 나타난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의 지난달 발표에서 한국의 행복지수는 157개국 중 58위였다. 국내총생산 등 물질적 요소는 물론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있는지 등 정서적 항목도 평가에 반영한 결과다. 지난해 47위에서 11계단이나 하락했다.

반면 자살률은 10만 명당 28.7명으로 단연 1위다.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전체 평균의 2배가 넘는다. 자살 원인도 누구나 1위일 거라 생각하는 경제적 문제(21.2%)를 제치고 ‘마음의 병’(28.7%)이 가장 많다. 세상은 갈수록 살기 편해지는데 한국 사회는 갈수록 불행해지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 서문에서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고 했다. 많은 이는 아직도 모든 걸 가졌을 때 비로소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행복은 주어지는 것도, 쟁취하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느끼는 거다. 진정 복 받은 자는 우리 주위를 맴도는 행복의 작은 조각들을 그때그때 붙잡을 줄 아는 자다.

방송인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어록 중에 이런 게 있다.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죠. 우리는 네잎클로버를 따기 위해 수많은 세잎클로버를 버리곤 해요. 그런데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뭔지 아세요? 바로 행복이랍니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 속에서 행운만 찾고 있는 건 아닐까요?”

행복은 연습이다. 행복해할 일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늘 되새기는 연습. 그리고 그 조그만 것들에 늘 감사하고 만족하는 연습. 4월은 잔인한 달이라지만 1년 중 가장 화려한 때이기도 하다. 주변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잠시 동네 산책이라도 나가 잔잔한 행복의 편린들을 마음에 담아볼 때다.

박신홍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