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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문명사적 대전환, 파괴적 혁신 없으면 대학은 죽어” 김 “고대·연대가 학생·교수·시설 공유 패러다임 보여줄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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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꽃샘추위로 봄날이 멀리 머물러 있던 지난달 중순, 연세대 김용학 총장이 먼저 대담실로 들어섰다. 총장 취임 45일째, 밀려든 업무에 약간 긴장한 표정이었다. 곧이어 고려대 염재호 총장이 미소를 머금고 나타났다. 총장 2년 차의 여유였다.

[직격 인터뷰] 송호근 묻고 김용학·염재호 답하다

두 사람과의 인연은 30년 세월만큼이나 깊다. 일찍이 1990년대 사회종합평론지인 『사회비평』 편집위원을 함께했고, 사적·공적인 일을 상의하느라 자주 회동했다. 의견은 항상 다채로웠다. 각자 수학한 대학이 다른 만큼 시각이 조금씩 엇갈렸다. 염 총장은 미국 서부 스탠퍼드대, 김 총장은 중부 시카고대, 사회자는 동부 하버드대를 나왔다. 김 총장은 미시적 관찰에서 거시이론을 끌어내는 고수이고, 염 총장은 전방위적 정책통이다. 난 최종 종합을 자처했지만 항상 이들의 지론에 밀렸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한국 사회와 교육의 미래를 이끌 두 총장의 책무는 막중하다. 제대로 길을 닦고 넘겨줘야 할 세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대학의 비전과 역할은 무엇일까. 답을 얻고자 3월 17일 중앙일보 논설위원실 회의실에서 ‘21세기 문명사적 대전환, 대학이 앞장서자’를 주제로 세 시간 동안 3각 대담을 했다.


알파고, 대학에 고정관념 깰 화두 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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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문명사적 대전환이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대학의 현실과 비전은 어떨까. 서울대 송호근 교수(왼쪽)와 연세대 김용학 총장(가운데), 고려대 염재호 총장(오른쪽)이 3시간 동안 열정적인 토론을 벌였다. [사진 오상민 기자]

송호근: 21세기,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점입니다. 그동안 대학은 정치권· 관료·경제계에 비해 너무 웅크렸던 것 같습니다. 책임을 방기한 것이죠. 지난 세기를 이끌어 왔던 쌍두마차, 대학과 언론이 다시 목소리를 내고 방향을 잡아가야 합니다. 서울대가 침묵을 지키는 상황에서는 특히 명문 사학의 총장인 두 분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염재호: 법인화됐더라도 사실상 국립대인 서울대가 어떻게 큰소리를 낼 수 있겠어요. 조용한 게 당연하지요(웃음).

송: 그래도 10년 전에는 입시제도 개혁 등 비판적 얘기를 더러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얼마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봤지만, 대학이 뭘 준비했는가 하는 반성이 들립니다. 21세기 인재를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기관인 연세대·고려대의 총장이 시대적 짐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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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대결한 이세돌(오른쪽)과 구글 딥마인드 CEO 허사비스.

김용학: 알파고 사건은 오히려 미래 100년을 향해 대학이 지금부터 속도를 맞춰야 한다는 내 교육철학을 훨씬 더 쉽게 이해시켜 줬어요. 지금 신입생들은 100세까지, 2100년까지 살아가겠죠. 이런 세대에게 산업사회의 교육 방식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좁은 분야의 전문인을 키워내는 교육이 인공지능 시대에는 의미가 반감되겠죠. 알파고는 미래 100년을 준비하자는 나의 메시지에 도움을 주는 사건이었지요.

염: 게오르규의 소설 『25시』를 보면 잠수함에 꼭 토끼를 데리고 탑니다. 그런데 토끼가 사람보다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 더 빨리 반응합니다. 대학과 지성은 바로 그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대학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죠. 내가 강조하는 ‘개척하는 지성’이 바로 그런 인재입니다. 제가 10년 전 이탈리아에서 제러미 리프킨을 만났어요. 우리는 ‘고용사회’는 끝났다는 데에 동의했죠. 그런데 대한민국은 아직도 대학평가에서 취업률을 따져요. 일간지에서 재미있는 글을 봤어요. ‘왜 대기업에서 사람들을 신규 채용하느냐’고 물었더니, 인사 담당자가 “청년 취업정책이 무슨 고용정책입니까, 그거는 복지정책이지요”라고 했다나요. 그냥 내버려두면 아무도 안 뽑는다는 거예요. 김 총장 말씀처럼 사회 시스템이 거의 네트워킹 구조인데 아직도 20세기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 합니다. 21세기 문명사적 대전환을 맞아 대학은 완전히 뒤집어져야 합니다.

송: 문제는 거기 있어요. 제가 강의실에서 가끔 이런 얘기를 해요. “자네들은 상위 0.5%에 속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일자리를 뺐지 마라. 99.5%에게 내줘라. 나가서 너희들이 일자리를 만들어라.” 그러면 황당해하죠. 이게 환상일까요. 대학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합니까.

김: ‘강의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problem solving), 또는 능동적 학습(active learning) 같은 개념인데, 지역사회와 지구촌에서 부닥치는 인류사적 문제를 학생들이 정의하고 해결 방식을 찾아가는 거죠. 교육현장의 개혁은 시작됐어요. 그게 진짜 산교육이고 공공성을 높여주는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송: 사회과학대학의 학생들은 공동체, 권력, 인간행동을 주로 이론으로만 배웁니다. 그러니 지역사회와 조직들에 직접 참여하는 교육 방식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대학의 담장을 허무는 출구가 필요하지요. 고려대에는 토론만 허용하는 건물이 있다면서요.

염: 지을 거예요. SK미래관이죠. 강의실이 없는 신개념입니다.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내가 하는 3무 정책, 유연학기제도 그런 거고요. 스탠퍼드대 총장이 “취업률 얘기는 안 한다. 창업을 얼마나 했는지, 그게 국내총생산(GDP)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중시한다”고 하더군요. 잘 훈련되고 정형화된 스페셜리스트들은 이제 필요 없어요. 김 총장 말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경제원론을 50명씩 쪼개서 20개 강의를 개설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송: 교수도 바뀌고, 강의 방식도 변해야 되겠네요.

염: 고려대가 개설한 과목이 1만 개 정도예요. 하버드나 스탠퍼드대는 2500개 정도입니다. 예전에는 좋은 교수를 만나려고 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갔지만 지금은 동영상과 인터넷이 있잖아요. 학생들의 자질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집어넣으려고만 하니까 바뀌어야 한다는 거예요.

송: 역시 돈이 중요하군요. 미국 사립대 등록금은 연간 5만 달러 선이죠.

염: 세계대학평가(QS)에서 서울대가 38위, 고려대가 100위권인데 5만 달러씩 받는 미국 남가주대(USC)가 우리보다 훨씬 뒤에 있어요. 이게 기적이죠, 기적. 우리는 투자는 않고 기적만 기대합니다. 등록금을 동결하려면 유럽처럼 부족한 예산을 중앙정부에서 대줘야 합니다. 그런데 교육예산의 80%가 초·중·고로 가요. 심각해요. 돈을 더 주든가, 아니면 사립대에 재정 자율성을 주든가 해야 하는데 반값 등록금이 이데올로기화돼 버렸어요.

김: 문명사적 대전환을 얘기하다 갑자기 돈 얘기를 하시네요.

송: 이 문제가 풀려야 문명사적 대전환을 이룰 수 있어요.

김: 염 총장은 개혁을 시작했고, 저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지만 계획은 있어요. 대학이 몸부림치고 소리치고 지성사적으로 문제를 진단하면 사회가 이를 귀담아듣나요. 위상이 너무 떨어졌고 반값 등록금에 끙끙 앓는 사정을 모르죠. 고사 직전에 이른 것은 대학의 소중함에 대한 사회 인식 부족 탓이기도 해요. 대학은 미래죠. 현재 대학의 꼴이 이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한 거예요.

염: 100% 공감하지만 대학의 문제도 있어요. 그동안 총장들이 리더로서 역할을 못했어요. 1970년대 김상협·백낙준 총장 같은 분이 없어요. 아무도 귀를 안 기울여요. 교육 방식을 전면 개혁해야 관심을 갖습니다. 경희대 조인원 총장이나 김용학 총장처럼 교양이나 인문학, 이런 기초체력을 탄탄하게 해주는 게 학부에서는 제일 중요한데 교수들이 잘 따라오지 않아요.

송: 교수들은 수백 개의 토굴 속에 들어앉아 있어요. 그래서 고려대와 연세대 총장이 대변혁의 전위를 맡아달라는 겁니다. 대표 사학이 깃발을 올려야 가능합니다. ‘관료제적 규제를 버려라’ ‘학비를 통제하려거든 재정 지원을 늘려라’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염: 교육부는 돈을 나눠준다면서 프로젝트화합니다. 줄 서서 사업을 따내라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대학은 망가집니다. 진정 노벨상 수상자를 키우려면 메이저 대학 10개에 약 1000명만 뽑아 전액 장학금·생활비를 대주고 대학원까지 보장해주는 시스템을 도입해야죠. 1000억원도 안 들어요. 그런데 끊임없이 KAIST·광주과기원 등을 만들어 연간 2000억원씩 대줘요. 서울대도 3700억원 주는데 비효율의 극치죠. 연세대와 고려대에 500억원만 깔아줘도 정말 잘할 텐데.

김: 불신 사회라서 규제가 강화된 거죠. 이해는 하지만 중요한 건 정부, 특히 교육부가 변해야 된다는 겁니다. 같이 변하는 코에볼루션(coevolution), 즉 공진화(共進化)가 필요해요. 예전에 돈 빼먹는 대학들 많았잖아요. 그러니 규제가 생길 수밖에 없고 교육부가 그렇게 진화해 온 거죠.

송: 대학과 정부가 동시에 변하는 공진화는 중요해요. 입시제도는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자사고·과학고·외국어고 문제는 그냥 두는 게 좋은가요. 서울시 교육감은 점진적으로 없앤다고 하는데….

염: 원래 목적에 충실하면 돼요. 외고는 외국어를 잘하는 애들, 과학고는 과학 잘하는 학생들을 키우면 돼요. 그런데 어느 과학고는 서울대 진학률이 최하위래요. 왜, 다 의대를 가니까. 그런데도 정부가 돈을 대주잖아요. 다 의대 가면, 의학고를 만들든가. 교육부가 규제해야 할 대상이 바로 그런 거 아닙니까. 규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요.

송: 교육부가 그런 중요한 규제는 손 놓고 사립대만 달달 볶고 있다는 뜻인가요.

염: KAIST는 원래 과학기술원이잖아요. 그런데 경영·예술·사회 다 하는 종합대가 됐어요. 이럼 안 되죠. 그래 놓고는 사립대엔 온갖 규제를 하니 공정 사회가 아닙니다. 대학 재정이 그렇습니다. 일본 와세다대와 게이오대는 예산의 7%를 전형료로 충당합니다. 우리는 다 써야 돼요. 제한도 해요. 교수들 감독비 가이드라인까지 있어요.

송: 숨을 못 쉴 정도군요(웃음).

김: 대학이 우수 학생을 뽑고 싶은 열망은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는 것과 똑같아요. 특목고 출신이 우수하니 많이 뽑게 됐죠. 그랬더니 사교육 시장이 엄청 크게 형성됐잖아요. 그래서 공공성을 증진해야 한다는 긴장감을 갖게 됐죠. 지역과 특별재능, 발명특기자 등으로 다양하게 뽑는 노력입니다.

염: 다양화라고 했나요.

김: 네. 그런데 너무 복잡하다는 비난이 쏟아졌어요. 중요한 건 이겁니다. 수시 지원 6회 제한 때문에 원서를 여섯 군데밖에 못 넣어요. 내가 연세대 경영학과도 가고 수학과도 가고 싶다면 이게 두 번 카운트가 되는 거예요. 이거 바보 같은 규제거든요.

송: 재력이 있거나 능력 있는 학생이 스무 군데 지원한다면 불공평한 거 아닌가요.

김: 별도로 농어촌전형 같은 게 있으니까 문제가 되지 않아요. 입학 직후에는 실력이 좀 떨어지는데 4년 지나고 나면 거의 비슷해요. 보람을 느끼죠. 꼭 한번 제안하고 싶어요. ‘수시’라는 의미는 뭐냐 하면 그야말로 ‘수시’잖아요. 그런데 왜 수시에 기간을 정해요. 수시로 하게 해야지.

송: 1년 내내 뽑을 수 있게 하자는 겁니까.

김: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수시로 어느 고교든 가서 ‘야, 너 합격’ 이러고 싶다는 거예요. 나중에 어떤 학생인지 보여줄 수 있어요. 우리가 다 서류 공개할 테니까. 시민단체가 공정성을 검토할 수 있지요. 정말 수시로 뽑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염: 예전에 과학고는 2학년만 마쳐도 대학 진학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고교 수업이 망가진다는 거죠. 조기 진학 학생들이 시간을 갖고 고민도 해보고 책도 읽고 하면 될 텐데, 왜 전 과목을 다 잘하게 만들려는지 모르겠어요. 교육부도 고민이 많을 테니 해결 방법을 달리해야죠. 교육학과 선생님들하고 탁상에서만 얘기하지 말고 대학하고 같이 논의해야 합니다. 수시 모집을 풀어주고, 잘못하면 잡아가세요(웃음).  


유람선 기다리지 말고 뗏목 만들어 창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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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육부 역할에 문제가 있다는 거죠.

염: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의 말이 기억납니다. 교육은, 특히 고등교육은 방송통신위원회처럼 위원회로 가도 된다는 거죠. 초·중·고는 교육청과 지자체가 책임집니다. 교육청이 정말 좋은 학교 만들면 서울 사람들 이사 갈 겁니다. 하나고가 고생하는 거 보면 알겠지만 학교 운영을 너무 힘들어하는 거예요. 쓸데없는 규제가 너무 심하죠. 정말 하려면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사교육을 잡아야 합니다. 대치동 가서 다 문 닫게 해야죠.

김: 이렇게 급진적인 반시장주의자인지 몰랐네요(웃음).

염: 전교조가 대치동 학원 문 닫게 하는 데모를 해야 돼요. 한 달에 1000만원 논술 과외가 실제로 있어요. 고려대 1년 등록금이 800만원인데, 그걸로 전체 교육비용의 반도 못 채우거든요.

김: 학생의 잠재력을 보고 언제든 수시로 뽑으면 사교육 시장을 무력화할 수 있어요.

송: 수능과는 상관없이 뽑자는 건가요.

김: 네. 학교 성적과 활동, 수시면접을 통해 선발하자는 겁니다.

염: 그럼 고교 정상화도 되고요. 우리는 1년 내내 탐색해 정원의 50%를 그렇게 뽑고 싶었어요. 연중으로 감춰진 보석을 찾아 지방 출장을 가는 거죠. 두 가지 전제가 있어요. 최소한 연세대나 고려대에서 한다고 하면 국민이 좀 신뢰해 달라는 것과 교육부가 1년 내내 수시로 뽑을 수 있게 허용해 달라는 것입니다.

송: 정리해 보죠. 평등지향적 심성 때문에 21세기를 이끌 창의적 인재를 키워내기가 어렵다는 것인데 입시제도의 폐해가 심각합니다. 어떤 인재를 키울 생각이십니까.

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헤크먼(Heckman)의 연구에 따르면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소프트 스킬(soft skill), 즉 인성과 인품, 배려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크다는 거죠. 한국도 그래요. 성품과 인간관계가 좋은 애들이 끝까지 오랫동안 성공하는 걸 보고 있거든요. 연세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그것입니다. 입시제도도 그 방향으로 바꿔 갈 겁니다.

송: 사실은 SKY 대학 입시제도가 전체를 좌우하고 있지 않나요.

염: 고려대는 근로장학금을 제공해서 학생들이 아르바이트할 수 있게 해주려고 해요. 주말에 강북지역 학교로 나가 성실하고 재능 있는 애들을 가르치는 거예요. 대치동의 대척점을 우리가 강북에 만드는 거죠.

송: 돈은 안 받고 합니까.

염: 소위 ‘흙수저’ 애들을 키워보겠다는 거예요. 성적장학금을 없애고 대신 이런 일을 하는 근로장학생을 늘렸어요. 세븐일레븐 알바하는 것 그만두고, 일주일에 두 번 가르치면 12만원을 줍니다. 4주 하면 50만원 정도죠. 지금은 학원이 과외 시장을 독점해 학생들에게 기회가 없습니다. 주말에 학교에서 입시생들을 가르치겠다는 거죠.

김: 연세대는 서대문구에서 하고 있어요. 7억원을 갖고 80명의 학생을 동원해 불우한 애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런데 지자체가 동참을 안 해요.

송: 청년 문제가 심각한데요.

김: 기성세대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불안감과 불확실성은 물론 희망조차 없는 세대에게 따뜻한 격려와 미안하다는 말이 좋은데, ‘우리도 그랬어, 인마’ 이렇게 나간단 말이에요. 위로와 동시에 뭔가 해줘야 합니다. 창업학을 개설해 운영해 봤어요. 한 학기에 9팀, 다음에 8팀을 키웠는데 실제 창업하고 매출을 낸 팀도 있어요. 창업정신을 불어넣는 게 중요해요. 저는 창업을 문화운동으로 정의합니다. 5월에 도서관의 중심을 창업 공간으로 바꿉니다. 창업 1단계지요.

송: 창업은 문화운동이라는 개념 좋네요.

염: 학생들에게 ‘줄 서봤자 유람선은 안 온다. 네가 뗏목이나 요트를 만들어서 나가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대기업 초봉이 높은데 그걸 마다할 학생이 있나요. 한국경총에 따르면 우리 대기업 초봉이 일본보다 39% 많은 평균 4200만원에 달합니다. 그러니 누가 모험을 하겠어요. 학생더러 창업하라고 하면 펭귄을 물에 차 넣는 건지도 몰라요. 지금의 생태계에서 창업했다 망하면 인생 끝장인데. 그래서 제가 주장한 게 ‘지식충전소’입니다. 대학에 1만 개의 지식충전소를 만들어 창업했다 돌아오는 청년들에게 월급을 주는 쉼터(shelter)를 만들면 됩니다. 연봉 3000만원, 3년을 보장하면 충분해요. 창업상비군, 3000억원이면 유지가 가능합니다. 연구개발(R&D)비를 19조원 쓰는 나라에서 이 3000억원을 못 빼는 거죠. 그러면 창업 학생들이 늘어설 겁니다.

김: 사회인을 위한 창업센터도 중요한데 실패 연습소로 대학을 활용해 달라는 거예요. 학생들은 실패해도 용인이 되니까 더 많은 지혜를 얻게 되죠. 사회에 진출할 때는 더 좋은 입지에서 또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어요. 창업까지는 안 가도 전 지구적인 중대한 문제를 풀려고 덤벼들어야지요. 대학의 창업을 정부의 창조경제와 연결시키면 좋을 텐데, 왜 따로 놀아야 하나요. 대학 교육과 창업적 아이디어, 사회적 프러블럼 솔빙이 결합하면 일석이조, 일석삼조가 됩니다.

송: 이제는 유람선이 아닌 뗏목, 바로 뗏목론이 중요합니다. 타고 건너라. 다만 그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은 만들어줄 필요가 있어요. 두 대학에 일을 낼 만한 연구팀이 있다고 자부하세요?

김: 창업 수익 상승세를 보면 희망이 생깁니다. 지난해 37억원이 올해 57억원으로 증가해요. 창업지원단을 통해 인큐베이팅한 기업이 돈을 벌어들이고 있어요.

송: 서울대는 스타 교수를 선발해 매년 3000만원씩 지원한다고 하더군요. 교수 지원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려내고 적어도 2~3년 케어해 줄 수 있는 제도가 대학마다 있어야 해요.

김: 의무방어전처럼 논문 몇 개 써내는 풍조를 바꾸려고 해요. 그렇게라도 안 하면 연구하는 사람들마저 손 놓을 위험이 있어요. 평가 기준을 질 기준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송: 교수 평가가 시작된 지 20년이 됐잖아요. 교수들은 모두 소총수가 됐어요. 그러니 두 대학이 정말 과감하게 바꿔주면 어떨까요. 화두를 던져보세요.

송: 김 총장은 네트워킹 이론의 대가인데, 대학도 네트워킹을 통해 집단적 창의성을 만들자는 것이죠. 지금의 대학은 고립된 셀입니다. 두 분이 지향하는 대학의 신모델을 구체화한다면.

김: 공유경제(shared economy) 개념에 근거한 자원공유(resource pooling)입니다. 대학 간 연합이죠. 고려대와 연세대가 보유한 모든 인력과 시설을 공유하고 제도의 호환성을 높이는 것이죠. 예를 들어 연세대 교수는 언제든지 고려대에 가서 강의할 수 있고, 고려대 교수도 연세대에 와서 할 수 있고, 공간도 서로 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송: 학생 교류와 학점 교류도 포함합니까.

염: 예. 그게 바로 창조적 파괴예요. 슘페터가 크리에이티브 디스트럭션(creative destruction), 즉 창조적 파괴를 얘기했는데 패러다임을 깨려면 리딩 그룹이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청년이여 분노하라’가 아니라 헤엄쳐서 건너갈 수 있는 모델을 보여줘야죠. 한국이 상속부자만 만들어내면 사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자원공유 모델은 창조적 파괴를 위한 첫걸음이자 자수성가형 인물을 길러내는 방안입니다.


두 총장의 합의와 제안



송: 두 분의 견해는 공감 영역이 넓어 보입니다. 부디 개혁 전선에 나서주세요. 지금까지의 논의를 키워드로 정리해 보죠.

김: 대학의 자체 개혁을 교육부가 지원해야 합니다. 이는 대학과 교육부가 동시에 변화해야 가능합니다(공진화 원칙).

염: 학생들을 수시로 선발하는 재량권을 달라는 것입니다. 수시는 수시여야 합니다(수시 재량권).

김: 고려대와 연세대의 자원 공유입니다. 교수·강좌·시설·학생·학점 교류를 포함한 모든 자원을 공유하는 리소스 풀링 시스템을 개발하고자 합니다(리소스 풀링). 동시에 인성과 성품, 인간관계가 좋은 사회적 인재를 키울 것입니다(인성교육).

염: 창업관을 만들어 일자리 만드는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정부가 창업 안전망을 만들어주고, 대학은 창업 실패자들을 안을 수 있는 지식충전소 역할을 해야 합니다(창업 뗏목론).

김: 양적 평가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모두 소총수가 되고 있는 현실을 과감하게 깨야 합니다(대학·교수평가 시스템 개혁).

염: 교육부는 프로젝트 중심의 사학 지원을 바꿔야 합니다. 사학에 재정 자율권을 주고, 지원을 늘려야 21세기형 인재를 키울 수 있습니다(재정 지원).

송: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년 뒤 다시 만나 추진 상황을 짚어 봅시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
1955년 서울 출생. 고려대 행정학과 학·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90년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로 부임해 기획실장·기획예산처장·국제교육원장 등을 거쳐 지난해 3월 19대 총장에 취임했다.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 정부 산하 단체에서 두루 자문하고,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와 일간지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
1953년 서울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 석·박사.

87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해 입학관리처장·학부대학장·사회과학대학장·행정대학원장을 거쳐 올 2월 18대 총장에 취임했다. 미국사회학저널(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등 학술지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총리실 인문사회위원회, 교육부 대학설립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글=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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