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공부하는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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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에이 비 시 디-·』
며칠전부터 큰 아이의 방에서 둘려오는 소리다.
올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큰 아이는 새로 공부하게 되는 영어가 흥미로운지 동생들과 노는 시간 외에는 알파벳을 쓰고 영어책을 읽는다. 따스한 봄바람에 노란 깃털 세우고 어미닭 따라다니는 병아리처럼, 깃발든 선생님 앞에 쪼르르 모여들던 국민학교 입학때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어느새 6년 공부를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어 서투른 발음으로 영어공부하고 있는 아이를 보니 마냥 대견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그 마음도 잠시 뿐, 며칠전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려고 알파벳을 써보니 대문자와 소문자가제대로 되지 않고 발음도 정확하지가않아 아이에겐 내색도 못하고 무척 당황했었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10여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번도 공부했던 것을 다시 반복하고 정리해서 머리속에 다져 넣을수 없었던 주부로서의 생활이 자신 없는 엄마를 만든것이다.
과외공부 폐지 후 공부하는 엄마들이 학원 마다 점점 늘어 난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참 요즈음엄마들 극성스럽다고 남의 일같이 생각했었다.
아빠·엄마는 무엇이든지 다 알고있다고 믿고 있는 아이들이 이미 희미해진 기억속의 어려운 문제를 질문하더라도 모른다는 대답으로 아이들을 실망시키기보다는 다시 공부해서라도 아이들을 지도하겠다는 그 뜻이 오히려 가상한 것을.
아이들이 잠든 밤, 아이가 공부하던 책을 읽으며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듯한 즐거운 마음으로 결코 부끄럽지않은 엄마가 되자고 공부를한다.

<서울은평구 갈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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