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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이잡듯…「롤러작전」|「모리나가악몽 10개월」…일경은 이렇게 수사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일본의 「그리꼬」「모리나가」 사건에서 협박당하고 있는 업체들 다음으로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 경찰이다.
자위대에 필적하는 22만명의 병력과 최신장비·기동력을 갖추고 있는 경찰이 사건발생 10개월이 지나도록 용의자는 커녕 사건의 성격조차 정확히 파악을 못함으로써 민완을 자랑하던 일본경찰 전체의 체면이 진흙구덩이에 팽개쳐진 꼴이 됐다.
1월11일 「스즈끼」(영목정민) 경찰청장관이 사건의 중심무대인 오오사까(대판)·효오고(병고)·교오또(경도) 3개 부현을 직접 방문, 수사진을 격려한 것은 전례가 드문 일로 이번 사건이 얼마나 경찰의 위신을 건드리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전경찰의 총력을 집중하겠다는 결의를 표시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경찰은 84년 3월18일 그리꼬식품의 「에자끼」(강기승구)사장 유괴사건이 터진지 6일만인 23일 오오사까·효오고 양 부현경찰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한데 이어 4월10일에는 이 사건을 「광역중요사건 114호」로 지정, 전경찰력을 동원한 수사에 착수했다.
범인이 신출귀몰하는데다 훔친 자동차를 이용하는 등 기동성을 보이자 8월에는 경찰청과 합동수사본부를 연결하는 컴퓨터를 설치, 도난차량은 물론 사고발생 지역의 통과차량 체크 및 소유자 확인, 유류품의 추적 등에 첨단기술을 동원한 수사체제를 갖추었다.
10월 들어 모리나가사 제품중에 청산소다를 넣은 독극물 과자가 발견되자 교오또부 경찰까지 가세한 합동수사본부는 매주말 4만1천명의 경찰력을 동원, 슈퍼마킷·백화점·큰제과점에 대한 순회점검을 실시, 희생자 발생을 막기 위한 예방조치를 강화하는 한편 주요도로에 대한 차량검문, 제과회사 및 회사간부 자택에 대한 경비를 실시,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이와 함께 10월말부터 「롤러작전」을 전개, 오오사까·효오고·교오또지역의 가가호호를 방문하는 탐문수사를 전개하고 있다. 특히 오오사까 북부의 호꾸세쓰(북섭)지역 80만가구 밀집지대에 대해서는 매일 5천8백명을 투입, 이잡듯 가가호호를 뒤지고 있다.
합동수사본부에는 또 6백명의 특별팀을 편성, 전과자·범죄조직·특수단체 등에 대한 탐문을 하고 있다.
이처럼 2중 3중의 수사망·경비망을 펼치고 최신의 과학기재를 동원한 과학수사를 벌이고 있는데도 범인의 윤곽조차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는 몇가지 요인이 지적되고 있다.
우선 인구의 도시집중과 이웃간의 단절로 탐문수사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며 둘째로는 대량생산·대량소비라는 사회경제적 특수성이 수사에 장애로 등장, 범인이 협박장·도청기·가방 등 많은 유류품을 남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적 증빙자료의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범인이 보면 협박장은 한결같이 일본타이프라이터제 타이프라이터로 찍은 것까지는 추적됐으나 판매댓수가 많고 낡은 물건은 내다버리는 것이 예사여서 그 이상의 소급추적이 안되고 있는 점 등이다.
경찰이 최신장비로 무장하고 있다지만 범인도 최신기술장비를 동원하고 있다는 점도 애로중의 하나다. 11월14일 「하우스식품」 협박사건때는 현금인도장소에 남긴 유류품 중에 경찰무전주파수에 맞춘 도청기가 발견됐다.
일본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와져 빈부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도 범인의 수사나 사건의 성격규명에 애를 먹이는 요인이다. 60년대 이전, 즉 고도성장기에 들어가기 전에는 돈과 관련되는 사건은 주로 빈민층이 주역이었다. 먹지 못하는 층의 범죄가 많았다는 얘기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1억2천만엔을 줄테니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어느 작가의 제의에 범인들은「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는 말로 일축하고 있는 것은 이번 사건의 성격이 무엇인지, 범인들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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