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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동주’는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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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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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
사회부문 기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배웠을 서시(序詩)를 다시 되뇌는 사람이 많아졌다. 지난달 개봉해 1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동주’의 영향이다. 전 국민의 ‘문학청년’ 윤동주(1917~45)의 삶과 고뇌를 잘 다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이번 주 서울시내의 한 대형 서점에 들렀더니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베스트셀러 3위에 올라 있다. 진열대 앞에는 20~30대의 발길이 많이 멈췄다. 영화 예매도 절반은 20대 몫이다. 영화를 보고 시집도 샀다는 직장인 친구는 “현실의 괴로움 속에서 본인을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되돌아보는 윤동주가 내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사실 요즘 청춘들은 문학을 읽지도, 하지도 않는 게 현실이다. 윤동주 시집 옆으로 눈을 돌리면 문학은 온데간데없다.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서 10여 권이 또 다른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놓여 있었다. ‘기획’ ‘공부’ 등의 문구가 눈에 띈다. 행정고시를 준비 중인 대학교 후배는 “눈앞에 닥친 스펙 쌓기, 취직 준비를 하다 보면 문학과 담을 쌓을 수밖에 없다. 문학청년의 낭만은 딴 나라 이야기”라고 푸념했다.

대학가는 인문학의 위기다. 국문과와 문예창작과가 통폐합되고 이들 전공을 택한 학생들은 소설 작가가 아닌 드라마 작가를 꿈꾼다. 2007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한 청년 시인은 파격적인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시집 한 권 내기도 어려운 현실에 좌절해 중문학을 공부하러 중국으로 향했다. 최근에는 한글이 아닌 중국어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김용희 문학평론가는 “요새 등단하는 문학청년은 가뭄에 콩 날 정도다. 문학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왜 동주는 인기일까. 젊은 층의 공감을 자아내 기 때문이다. 주변의 어려움에도 순수함을 추구한 인간적인 모습, 짧고 간결해 읽기 쉬운 문체 등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없는 문학청년의 이미지가 생생히 살아났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젊은 세대가 문학청년의 노스탤지어(향수)를 1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데려온 셈”이라고 말했다.

이웃 일본에선 인공지능(AI)이 단어를 조합해 만든 단편소설이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사람의 손길이 사라진 원고지에 컴퓨터 두뇌가 들어설 수도 있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감성과 성찰의 문학을 빼앗길 수는 없다. 앞 세대가 정해 놓은 길을 힘겹게 따라가는 젊은이들에게 뒤를 돌아보게 하는 ‘동주’는 더더욱 필요하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언젠가는 베스트셀러 진열대에서 사라질 거다. 그 뒤에도 제2의 동주, 또 다른 문학청년은 나올 수 있을까.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