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 살다] (18) 마운틴빌라의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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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하산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권경업씨는 그런 상념에 잠겼었다. 권씨의 상념은 그때로부터 정확히 1년 앞을 내다본 통찰이었다.

장경덕 대장이 이끄는 서울고 산악부 OB회인 마운틴빌라의 토왕폭 등반대 9명은 크로니팀이 토왕폭을 초등한 지 꼭 1년 만인 1978년 1월 11일 토왕골로 들어갔다. 한 해 전 권경업씨가 만난 두 산사나이들은 마운틴빌라팀의 정찰대원이었던 것이다.

12일 토왕폭 하단 아래쪽에 베이스를 치고 장경덕.최영규 대원이 오후 4시쯤 등반을 시작해 동대 테라스까지 진출한 후 자일을 고정시켜 놓고 캠프로 돌아왔다. 그 이튿날 오전 9시30분 등반을 재개한 두 대원은 오후 4시쯤 하단 등반을 끝냈다. 놀라운 속도였다.

1월 15일, 전날 상단 80m까지 설치해둔 자일을 타고 최영규.김기환 대원은 오전 8시30분쯤 상단 등반에 들어갔다. 그들은 재빨리 움직여 오후 4시쯤 1백10m 지점에 세번째 테라스를 깎았다. 이제 위쪽으로 남은 토왕빙벽의 길이는 20여m에 불과했다.

뒤쪽을 맡은 김기환 대원을 제3 테라스로 올려놓고서 최영규 대원은 어둠 속의 토왕폭을 줄기차게 올랐다. 오후 11시30분까지 확보를 보고 있던 김대원의 손에서 자일은 계속 위쪽으로 빠져나갔다. 그 자일 끝을 맨 최대원의 위쪽으로 토왕은 정수리 부분 7m 정도를 남겨 두고 있었다.

토왕폭 완등의 고빗사위를 완전히 넘어선 것이다. 그 고빗사위가 끝나는 지점에 뿌리를 내린 나무 한 그루가 앞선 최대원의 눈에 들어 왔다. 최대원은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한 그 나무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 나무를 잡고 밑둥의 굵은 우듬지에 확보줄만 걸면 초등과 2등 때 12일씩이나 걸린 등반시간을 나흘로 줄이는 기록을 세우며 토왕폭 3등의 영광을 손에 쥐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 순간 '아악!'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밑에서 확보를 보고 있던 김대원의 손에 잡힌 자일이 어둠 속으로 마구 빠져나갔다. 나무를 향해 나아가던 최대원의 해머가 완전히 박히지 않은 눈더미에서 빠져나오는 바람에 최대원이 그대로 떨어진 것이었다.

30여m 밑으로 떨어지던 최대원은 김대원의 필사적인 확보로 제3 테라스 아래쪽 5~6m 지점에서 멈춰 외줄에 매달리게 됐지만 추락 도중 양쪽 발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김대원은 안간힘을 다해 부상한 최대원을 테라스로 끌어올렸다.

테라스의 두 대원은 하강하기로 했다. 김대원이 먼저 제2 테라스로 내려섰다. 하지만 뒤이어 내려온 최대원은 부러진 발목 때문에 제대로 하강하지 못해 자일을 엉키게 만들었다. 그 바람에 두번째 테라스로 내려서지 못하고 빙벽에 꼼짝없이 매달리게 됐다. 그것으로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끝났다.

토왕폭으로 골짜기의 물을 몰고 가는 함지덕 위로 찬 조각달이 걸리고, 사위는 조용해졌다. 다만 초조한 시간만 흘렀다. 날이 밝으려면 다섯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섭씨 영하 16도로 곤두박질친 설악의 날씨는 구조대에게 해 뜨기를 기다릴 만한 짬을 주지 않았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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