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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신드롬 낭비하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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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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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일
중앙일보 고문·전 재무부 장관

알파고와 인공지능(AI)은 아직도 모든 언론 매체와 모임의 화두가 되고 있다. 이세돌의 패배보다 AI의 승리가 몰고 온 충격으로 우리 사회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려와 공포 그리고 기대와 희망이 엇갈리는 ‘알파고 신드롬’을 경험하고 있다. 사회의 관심을 일단 미래의 먹거리와 일자리로 돌려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함을 일깨워준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올해 초 다보스포럼에서는 AI를 비롯한 정보지식 관련 기술을 바탕으로 진전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많은 관련 기업인들과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종합한 보고서가 발표된 바 있다.

이전의 산업혁명에 비해 진전 속도가 훨씬 빨라 앞으로 5년 이내에 기존의 생활방식과 생산·소비 행태, 산업과 일자리 수와 구조, 정부와 기업 등 모든 조직의 경영·관리·운영 등 사회 전반에 걸친 큰 변화가 예상돼 대응책 마련이 시급함을 강조해 세인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미 과거에 생각지도 못한 일을 AI가 해내고 있다. AI의 발전 속도를 생각할 때 아마 이세돌은 알파고를 이겨본 유일한 기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멀지 않은 장래에 AI를 구비한 기구나 로봇이 각 가정에 몇 대씩이나 있는지 따질 때가 올 가능성도 상당히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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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이러한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물론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개혁이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물론이며 타 분야의 전문지식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제도와 방법에 대한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여기서 재론할 여지도 없다. 그리고 현재 취업하고 있는 모든 근로자를 위한 재교육 및 재훈련 체제를 마련하는 일은 더욱 시급하다. 구글의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될 때 기존 택시기사들을 하루아침에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20년 이내에 미국 근로자의 거의 절반이 기술변화에 따른 일자리 전환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이것은 노동시장 유연화의 중요성을 웅변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정부는 교육 부문 전반에 대한 새로운 개혁의 틀 안에서 시대착오적인 규제와 간섭을 대폭 제거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어떻게 AI와 소프트웨어를 중시하는 정부하에서 대학 컴퓨터학과 학생 수를 정원 규제의 경직된 틀 안에서 제한해 오히려 졸업생 수를 줄여나갈 수 있나.

또한 다보스 전문가들은 남을 이해하고 설득하며 남과 협력하고 남의 아이디어를 융합할 수 있는 ‘감성적 지능’ 혹은 사회적 기능(social skills)이 모든 직종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중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가 특히 주목할 대목이다. 아직도 대학 전공 분야를 과학·기술 분야와 인문학으로 경직되게 분리·운영하며, 어릴 적부터 기계적이고 비창의적인 과외공부에 지치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재 교육 현실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에 대비한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개혁과 함께 창업과 기존 기업의 혁신 활동을 촉진해 경제 체제의 역동성을 제고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최대한 창출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정책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기업과 기업가정신이 존중되고 존경받는 사회적 풍토 조성을 위해 기업과 정부가 함께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기업과 기업가정신에 대한 올바른 학교 교육은 물론 중요하다.

알파고 충격 이후 정부는 대통령 주재의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신설하고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차원에서도 새로운 기업 지원 제도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실리콘밸리가 성공한 것은 ‘워싱턴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말의 참뜻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또 다른 간섭의 고리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정부 지원책보다 현재 기업 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부정적 요소를 제거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예를 들면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기에 앞서 기존의 법적·제도적 장애부터 해결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 아니겠는가. 대통령이 주재할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도 해당 부처 차원에서 해결하기 힘든 이런 중요한 문제부터 우선적으로 다뤄질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1957년 소련의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이후 ‘스푸트니크 위기’를 맞았다. 이에 미국 정부는 과학·기술에 대한 대폭적인 투자 확대와 함께 과학·기술 관련 인력 양성과 연구·개발을 위한 각종 제도 정비 그리고 과학·기술 교육을 강화한 바 있다.

우리 정부도 ‘위기를 낭비하지 마라’는 경구대로 알파고 신드롬을 평소 추진하기 어려운 교육개혁과 노동시장개혁 그리고 기업여건 개선 등을 위한 국정개혁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국가 발전의 큰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