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 넘은 새터민 여성들, 강인한 생활력이 강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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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북한 여성들은 자유를 찾아 사선(死線)을 넘어왔습니다. 그만큼 건강하고 생활력도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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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우 대표는 2012년 생활력 강한 함경북도 출신의 새터민 주정옥씨와 결혼했다. [사진 남남북녀]

남한 남성과 새터민 여성(탈북 여성)을 맺어주는 ‘남남북녀결혼정보회사’ 홍승우(45) 대표의 말이다. 그는 10년 전인 2006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무역업을 하던 중 탈북자 가운데 남성보다 여성, 특히 미혼 여성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 계기였다.

‘남남북녀’ 맺어주는 홍승우 대표
탈북여성 한국 정착 돕고 싶어 시작
회사원 남성, 평양 출신 여성이 인기

홍 대표는 “탈북 여성들이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정착한 뒤에도 가족없이 쓸쓸히 지내는 걸 보고는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새터민 2만8795명 가운데 여성은 2만292명으로 70%에 달한다.

홍 대표가 지금까지 결혼을 성사시킨 남남북녀 커플만 550여 쌍이다. 그렇지만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그는 “초기에만 하더라도 새터민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때문에 어려움이 컸다”고 했다. 또 일부에선 새터민 여성들을 상대로 ‘장난질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보냈다.

하지만 새터민 여성들이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친근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들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사업도 자리를 잡게 됐다고 한다. 지금은 남한 남성과 북한 여성을 연결해주는 업체만도 20여 곳에 달한다.

홍 대표는 “새터민 여성이 희망하는 신랑감 유형도 10년 새 많이 바뀌었다”고 소개했다. 초기에 사업가를 선호하던 분위기에서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회사원처럼 고정 수입이 보장되는 월급생활자를 더 찾는다는 것이다. 그는 “새터민 여성들은 위험한 국경 지대를 넘고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왔다”며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남성을 더 선호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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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여성 중에서는 평양 출신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평양 말은 다른 지역 사투리에 비해 부드럽고 평양에 거주한 사실 자체가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현재 ‘남남북녀’의 회원들 중엔 중국과 인접한 함경북도 출신 여성이 70%쯤 된다. 함경도 여성은 강인한 생활력이 장점이라고 한다. 홍 대표가 2012년 결혼한 부인 주정옥(42)씨도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새터민이다. ‘남남북녀’는 남성 회원에게선 3백만원의 가입비를 받지만 여성은 무료다.

홍 대표는 남한 남성과 새터민 여성을 이어주는 일이 앞으로 통일 시대의 초석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최근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악화 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북녘 동포까지 북한 정권과 동일하게 봐서는 안 됩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도 동독 출신이었지 않습니까. 새터민 여성들도 사회적 지원만 있다면 메르켈 총리처럼 한국 사회의 어엿한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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