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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운찬 칼럼

청년실업 문제도 동반성장으로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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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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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가히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 노동계, 재계, 그리고 말 좀 한다는 인사들이 다들 나서 한마디씩 거든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니 청년 일자리 문제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임은 분명하다.

청년들의 삶이 고달플수록 ‘청년’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팔리는 ‘인기 상품’이다. 작년 한 해에 ‘청년’을 가장 많이 언급한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다(‘청년실업, 언론보도와 국민인식’ 보고서:한국언론진흥재단). 드라마·웹툰 등 문화 콘텐트의 단골 소재이자 담론의 중심이기도 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롯해 『88만원 세대』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 청년이 주제인 책도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청년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사회가 ‘청년’을 대량 소비하는 동안 청년들은 ‘헬조선(hell朝鮮)’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쳐댄다. 뼈아픈 역설이다.

2015년 말 기준으로 공식적인 청년(만 15~29세) 실업자는 39만7000명(실업률 9.2%)이다(지난 2월에는 12.5%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실업자 4명 가운데 한 명이 청년인 셈이다. 이것은 200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체감 실업은 더 심각하다. 통계청이 보조 지표로 발표하는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체감 청년 실업자는 108만9000명(실업률 22.0%)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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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일자리는 양적으로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질도 악화되고 있다. 2014년에 1년 미만의 단기 계약직으로 직장을 시작하는 대졸 청년의 비율은 20%를 넘어섰다. 2008년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이다. 이들 중 많은 청년은 계약 만료라는 형식의 사실상 해고로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계약직이다. 그렇게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면 노동시장 주변부를 끝없이 배회할까 걱정이다.

사실 청년 일자리 문제만을 위한 뚜렷한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산업·교육·노동 등 복합적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 이 문제는 사회안전망·사회보상체계 등 사회정책 영역과도 연관을 맺고 있다. 단순히 노동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라고 불리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최근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개혁’처럼 청년 일자리 문제를 노동시장 내부로만 좁히면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 일관된 정책 기조로만 해결이 가능하다.

2015년 우리 경제는 2.6% 성장에 그쳤다. 3년 만의 최저치다. 성장률이 하락하고 경제가 활력을 잃으면 일자리가 늘어나기 어렵다. 늘어난 일자리도 대부분 간호보조사·사회복지사·보육교사 등 사회서비스 부문이다. 청년들 입장에서 미래가 불안정한 일자리를 첫 직장으로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 정년 연장이 의무화되면서 기업들이 청년을 정규직으로 신규 고용할 유인은 더욱 줄었다. 임금피크제는 그 대책이 될 수 없다. 정부가 아무리 고용보조금을 투입하더라도 기업 입장에서는 총 노동비용이 증가해 셈이 맞지 않는다. 비정규직 기간 연장이나 일반해고 요건 완화도 마찬가지다. ‘오상식 과장’을 해고한다고 ‘장그래’가 정규직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양적 확대에 치중한 정부의 정책 기조를 일자리의 질 개선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청년 실업이 발생하는 건 아니다. 일자리는 있다. 다만 그 일자리의 질이 너무 낮아 청년들이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상위 10%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라 나머지 90%를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로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 중간 수준의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청년들이 선택하고 숙련과 경력을 쌓아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일자리는 중소기업에 있다.

중소기업이 건실하게 성장해야 청년을 위한 괜찮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건실한 성장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건실한 투자 증가가 전제돼야 한다. 현재 대기업은 돈이 천문학적으로 많으나 투자 대상(첨단·핵심 기술)이 부족하다. 그에 반해 중소기업은 투자거리는 많으나 돈이 없다. 그래서 대기업에 흘러갈 돈이 합법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중소기업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자금 여유가 생기면 투자 증가, 생산 증가, 고용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내가 5년 전부터 주장해 온 초과 이익 공유, 중소기업 적합 업종 선정, 중소기업 위주의 정부 구매 등이 절실한 이유다. 결국 청년 실업 문제 해법은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 중소기업의 자조 노력, 정부의 적극적 정책이 아우러진 동반성장에 달려 있다. 물론 동반성장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실현 가능한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