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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장 열리자 너도나도 쿠바로, 호텔 숙박비 두 배로 껑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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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호 10면

쿠바 수도 아바나의 한 주유소에 자동차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미국과의 국교정상화와 개혁·개방 정책으로 자동차 보급이 크게 늘었지만 베네수엘라로부터 싼값에 제공받던 석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쿠바는 에너지난을 겪고 있다. [사진 조희문]

지난해 7월 20일 미국과의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쿠바가 급변하고 있다. 그동안 ‘갇힌 섬’이었던 쿠바에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관광객들이 쇄도하고 있다.


개혁·개방의 거대한 물결은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국가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태세다. 20~22일 사흘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신(新)쿠바로 거듭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남미 전문가인 조희문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쿠바를 구석구석 누비며 본 속살을 전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쿠바 방문(3월 20~22일)을 앞두고 17일 아바나의 한 레스토랑 앞에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사진이 실린 포스터가 걸려 있다. [AP=뉴시스]

“세상에, 1년도 안 돼 호텔 숙박료가 두 배로 뛰다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지난 1월 1년 만에 다시 방문한 쿠바는 그렇게 변해 있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가져다준 계기는 18개월간의 비밀협상 끝에 결실을 본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다. 2014년 1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53년 만에 외교관계 복원을 선언했다. 그 한 달 후인 지난해 1월 쿠바에 갔을 때만 해도 눈에 띌 만한 큰 변화는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1년 사이 외국 관광객이 크게 느는 등 수요가 급증하면서 당시 묵었던 5성급 나시오날호텔의 숙박비가 두 배로 올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관광객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급 호텔 수를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호텔 숙박비를 쿠바 정부가 정해놓았으니 사정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쿠바에서 외국인 여행객이 머물 수 있는 곳은 호텔 아니면 정부 허가 민박(카사 파르티쿨라르라고 한다)뿐이다. 외국인이 들어갈 수 있는 민박집에는 배의 닻과 같은 파란색 표식이 있다. 민박 값도 덩달아 올라 있었다. 나는 이번 쿠바 체류 중 절반은 호텔, 절반은 민박 체험을 했다. 마침 출국하기 전 미국의 온라인 숙박예약 회사인 에어비앤비(airbnb)가 쿠바 당국으로부터 영업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선 여기를 통해 민박을 잡았다. 민박은 부족한 호텔을 메워주는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아바나 시내 곳곳에서 ‘방을 빌려준다’는 안내문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바나 시내 곳곳 ‘방 빌려줍니다’ 안내문 이렇다 할 수출 상품이 없는 쿠바는 외국인 관광객이 제2의 캐시카우(수익원)다. 최대 수익원은 해외 쿠바인들의 송금이고 공식적인 수입원은 의료 수출이다. 관광객이 전년 대비 17.4% 증가했을 뿐인데 숙박료는 두 배로 뛰었으니 해도 너무했다. 쿠바 통계정보청(ONEI)에 따르면 지난해 쿠바 땅을 밟은 외국인 관광객은 352만 명이다. 전체 인구 1140만 중 210만이 몰려 있는 수도 아바나로 대부분 입국하니 관광객 수가 적은 것은 아니다.


국적별로는 캐나다·독일·미국·프랑스·영국·이탈리아·스페인 순이다. 중남미에서는 이웃 나라인 멕시코와 베네수엘라에서 많이 찾는다. 직항로가 있는 캐나다는 130만 명이 방문해 10.6% 증가했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국교정상화 발표 이후 16만 명으로 76.6% 급증했다. 현재 미국에는 200만 명 넘는 쿠바인이 살고 있다. 미 플로리다주에서 쿠바까지 거리는 150㎞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이 직항로를 허가하고 크루즈와 정기 여객선을 띄우면 연간 1000만 명 넘는 미국인이 쿠바를 방문할 수 있다는 예상도 있다. 프랑스와 영국도 각각 33.6%, 25.4%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쿠바 특수를 노리는 미국 민간 항공사들은 앞다퉈 쿠바 취항을 신청하고 있다. 아메리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사우스웨스트항공·제트블루 등 여러 항공사들은 아바나와 다른 쿠바 주요 도시를 왕복하는 항공편 운항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르면 올여름 취항이 가능할 전망이다. 양국 정부는 올해 정기 항공노선을 110편까지 늘리기로 했다. 현재는 쿠바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와 탬파 그리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매일 10~15편의 전세기가 비정기적으로 쿠바를 오가고 있다.


외국 관광객들이 쿠바를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여행객의 낭만과 환상을 자극하는 사회주의국가. 연중 해수욕이 가능한 코발트빛 카리브해, 인상 좋은 혁명가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쿠바 시가와 모히토(칵테일의 일종)로 유명한 헤밍웨이 트레일이 있는 곳.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같은 쿠바 재즈, 시가 농장이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비냘레스, 해안이 멋있는 바라데로, 쿠바 살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트리니다드. 손꼽을 관광자원은 이렇게 많지만 제일 먼저 외국인을 반기는 것은 강렬한 열대 원색의 1950년대 미국산 올드 카들과 살사 음악이다. 세계화의 무한질주에서 살다가 갑자기 50년대 차가 살사 리듬을 타고 번듯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 묘하다.


쿠바 야구선수, 美메이저리그서 뛰게 돼 경제난으로 찌든 도시에서 과거와 현재, 인생의 희로애락이 묘한 동거를 하고 있는 곳. 그래서 혁명의 통쾌함, 낭만, 그리고 짜증과 연민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쿠바의 매력이다. 거기에 안전은 덤이다. 내 경험으로 길거리를 헤매면 영락없이 경찰이 나타나 도움을 준다. 사회주의국가에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징표다.


쿠바 여행의 진수는 무엇보다 친절하고 밝은 쿠바 사람들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마다하지 않고 맑게 웃는다. 도시 어느 곳에 있건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지고 골목길까지 넓게 길을 닦아놓았지만 차가 많지 않아서 좋다. 길은 번호로 표시돼 찾기 쉽다. 골목마다 표지석이 있다. 차 없는 넓은 도시 골목길에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맞으며 걸어봐라. 나는 밤에 걷는 게 그렇게 좋았다.


지난 1년간 변화 중 자영업(민박·택시·식당 등), 인터넷 그리고 한류 열풍이 특히 내 눈길을 끌었다. 2006년 형피델로부터 정권을 인수한 라울 카스트로는 바로 개방적 개혁 조치를 했다. 우선 휴대전화·냉장고·텔레비전 등 전자제품 구입과 내국인의 호텔 출입을 허가했다. 해외 쿠바인의 송금과 소비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그리고 2011년 1월 2차 개방·개혁을 통해 178개 업종에 대해 민간 영리활동을 허가했다. 정부 배급으로 부족하니 일해서 부족분을 채우라는 의미다. 2012년부터는 쿠바인의 해외여행도 허가했고 2013년 10월 3차 개혁 때는 부동산과 자동차 매매도 허가했다.


상응해서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을 닷새 앞둔 지난 15일 여행 자유화 대폭 확대 등 대(對)쿠바 제재 추가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 회사들은 본토 내에서 쿠바인을 자유롭게 고용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쿠바의 야구선수들은 앞으로 법적 걸림돌이 사라지며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자유롭게 뛸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또 교육 목적의 개별적인 쿠바 방문도 허용된다.


지난 16일(현지시간)에는 쿠바행 우편물을 실은 항공기가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쿠바로 출발했다. 이 항공기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 여성에게 보내는 답장편지도 실려 있었다. 미국과 쿠바 간 직접 우편은 1963년에 단절됐다. 그 이후엔 제3국을 거쳐 우편물을 주고받아 왔다. 양국은 지난해 12월 직접 우편 업무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가장 큰 수출품은 의사 등 인력 송출 지금까지 진행만 보면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 분위기에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유흥도 즐길 수 있는 관광대국을 꿈꾸는 것 같다. 미국 관광객만 받는다 하더라도 플로리다 같은 관광 환경을 만들면 경제회생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관광대국의 청사진에도 덫은 있어 보인다. 관광은 쿠바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어느 정도 기여는 하겠지만 관광이 경제부흥의 중심축이 되기에는 관광 인프라가 열악하고 창출되는 직업 수준이 높지 않다. 국가 발전을 선도하려면 하이테크 뿐 아니라 다양한 수출상품의 개발도 필요하다. 미국 관광객이 증가한다고 해서 쿠바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관광은 가장 쉽게 연관 직업을 창출하고 소득 증가에 기여할 수 있고 당장 필요한 돈을 쿠바 시장에 풀 수는 있다.


사실 쿠바의 가장 큰 문제는 식량과 에너지다. 수입품 대부분이 석유와 식량이다. 주요 공급처였던 러시아와 베네수엘라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쿠바 경제도 같이 휘청였던 이유다.


쿠바가 가장 많이 수출하는 것은 의사와 숙련공들이다. 대부분 베네수엘라·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로 파견된다. 정부 프로그램으로 가는 경우 석유나 식량을 대가로 받는 경우가 많다. 현지 생활비를 제외하고 국내 월급보다 네 배 이상 많이 받을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우스갯소리로 쿠바의 가장 큰 수출품은 인력 송출이라고 한다. 아마 지금은 쿠바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숙련된 고급 인력을 가장 싼 임금으로 제공할 수 있는 국가일지도 모른다. 넘쳐나는 고급 인력을 해외로 송출하고 관광업에 투입해 국내외로 외화벌이를 하면서 시장 개방의 속도와 방법을 고심하는 쿠바 정부의 고민이 느껴진다.


조희문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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