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상품 판매가 시작된 지난 14일.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 1층 창구에서 ISA 1호 가입 행사가 열렸다. 주인공은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강 의원은 ‘중위험’으로 투자성향을 진단받은 뒤 1000만원으로 중립·멀티형 상품이 담긴 ISA에 가입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 강 의원과 함께 한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과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는 사진만 찍고 ISA 계좌를 만들지 않았다. 황 회장은 다음날 여의도 신한금융투자 본점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일임형 ISA에 가입하는 행사에서도 ISA계좌를 만들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비과세 해외펀드가 출시될 때 1호 가입자로 나섰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황 회장은 ISA에 가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ISA는 지난해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이면 가입할 수 없게 돼 있다.
업계에선 황 회장과 유상호 대표가 주식이나 펀드, 배당 등으로 얻은 금융투자소득이 연간 2000만원을 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ISA 고객 유치 경쟁에 나선 주요 증권사들의 최고경영자(CEO)들 중에도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돼 ISA 가입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 CEO 중에는 ISA에 가입한 사람은 14일 자사 일임형 ISA상품에 가입한 권용원 키움증권 대표가 있다. 김원규 NH투자증권 대표와 나재철 대신증권 대표도 이달 안에 ISA 계좌를 열 예정이다.
ISA는 소득을 입증할 수 있는 근로 소득자, 사업 소득자(자영업자), 농어민이 가입할 수 있다. 미성년자라도 근로 소득이 있는 15세 이상이면 ‘청년’으로 인정돼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전연도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가입할 수 없다.
ISA를 먼저 시작한 영국과 일본에선 소득에 따라 가입대상을 제한하지 않고 일정 연령 이상이면 누구나 계좌를 만들 수 있다. 한국 역시 애초엔 전 국민이 가입할 수 있는 모델로 제도가 설계됐다. 하지만 이후 법령이 개정되며 가입대상이 제한됐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ISA는 연소득 5000만~1억원 수준의 중산층이 가장 큰 혜택을 누리도록 설계됐다”며 “부자감세 논란을 피하고자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를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표영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한국 ISA는 가입대상이 제한돼 또 다른 금융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며 “투자문화 활성화로 국민 재산을 불리자는 ISA 도입의 당초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제한 요건을 완화·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ISA 가입 대상자나 가입 금액을 확대하면 세금혜택은 고소득자에 더 유리하다“며 ”이렇게 되면 계층 간 과세 공평성을 저해하고 저소득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