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선신의 신선한 MLB] ⑥ '강스타' 강정호의 예고 홈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강정호 선수를 인터뷰할 예정이라고 하니까 류현진 선수가 그러더군요.

정호는 이미 현지인이 됐던데요?"

류현진 선수 말대로 강정호 선수는 피츠버그 파이리츠 입단 1년 만에 현지인이 된 것 같습니다. 현지인 정도가 아니라 강정호 선수는 피츠버그의 스타(아참, 그의 별명이 '강스타'이기도 하죠. '강스타'는 지난해 피츠버그 동료들이 강정호를 루키처럼 대하자 강정호가 '나 한국에서 스타였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 됐습니다)입니다.

지난 5일 미국 플로리다 브레이든턴의 맥케크니 필드를 찾았습니다. 이날 강정호 선수가 수술 후 처음으로 라이브배팅을 했죠. 운 좋게도 도착하자마자 강정호 선수의 건강한 모습, 시원한 타격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강정호 첫 타격 [영상 김선신] 



그런데, 이게 웬일? 강정호 선수에게 공을 던지는 투수가 지난해 19승을 올린 에이스 게릿 콜이었습니다. 라이브배팅이라고 하더라도 재활 프로그램의 한 단계일 텐데 에이스 투수가 강정호에게 공을 던져주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강정호 선수는 시크하게 말했습니다.

에이, 쟤도 시범경기 등판 준비해야 되니까 던진 거죠. 대단한 일 아니에요."

강정호 선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타격훈련을 했습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엔 "설렌다"고 하더군요. 무릎 부상 후 6개월 만인데 오죽할까요. 그런데 몇 개 치지 않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강정호 선수 성에 차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타격 기회가 많지 않은데 볼을 던진다며 장난처럼 투덜대기도 했죠.

1년 전 맥케니크 필드에 왔을 때 강정호 선수와 지금의 강정호 선수는 전혀 다릅니다. 지난해에는 아무래도 긴장한 느낌이 있었죠. 한국에서는 '조디 머서와 유격수 주전 경쟁을 한다'는 기사가 많이 나갔지만 실제로 와보니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강정호 선수가 백업으로라도 버티면 다행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맥케크니 필드 곳곳에서 강정호 선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태극기를 흔드는 팬까지 있었죠. 저희 취재진이 강정호 선수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현지 방송국이 촬영해 방송에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강스타' 덕분에 저희도 미국 방송에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 이미지

피츠버그 팬

기사 이미지

매케니크 필드 어디에서든 강정호 선수의 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태극기를 흔드는 팬도 있었죠. 보고도 믿기 힘든 장면입니다. [사진 김선신]

취재가 끝난 뒤 맥케크니 필드에 있는 용품숍에 들렀습니다. 세상에나, 강정호 선수의 용품(손목보호대)의 '해적선장' 앤드류 맥커친 것과 나란히 매대에 진열돼 있는 겁니다. 그만큼 강정호 선수의 인기가 높다는 뜻이죠. 그의 실력만큼 브랜드 파워도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클린트 허들 감독은 강정호 선수만 보면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대화를 나누다가 춤을 추는 사진도 찍혔죠. 허들 감독의 아들 크리스찬도 강정호 선수의 팬이라는 건 현지에서 유명한 얘기죠. 피츠버그 홍보팀장의 아들도 강정호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는군요.

영어 해보라고요? 한국말도 잘 못하는데. [영상 김선신] 



피츠버그 팬들은, 특히 어린이 팬들은 왜 이리 강정호 선수를 좋아할까요? 야구 실력도 좋지만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기도 합니다. 강정호는 아이와 동물을 특히 좋아합니다. 쉬는 날 동물원에 가기도 하고, 어린이 팬들에게 유독 친절하죠. 이런 모습에 아이들이 더 친근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기사 이미지

매케크니 필드의 용품숍. 매대 가장 좋은 위치에 매커친 선수와 강정호 선수의 손목 보호대가 나란히 진열된 모습. [사진 김선신]

강정호 선수는 자신의 인기를 얼마나 실감하고 있을까요? 그는 지난해 10월 시카고 컵스와의 치러진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추억했습니다. 경기에 앞서 출전선수 소개를 한 뒤 강정호 선수의 이름이 불린 순간입니다. 한 달 전 무릎 수술을 한 강정호 선수가 휠체어를 타고 그라운드에 등장하자 피츠버그 팬들이 기립박수를 보냈죠.

정말 뜨거운 박수를 받았어요. 그 많은 팬들이 날 위해 박수를 쳐주는 걸 보고 깜짝 놀랐죠. 제가 지난 겨울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재활훈련에만 매달린 이유는 단 하나,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예요."

이 시크한 남자도 팬들의 사랑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나 봅니다. '현지인'이 됐어도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그러나 강정호 선수는 그 마음을 꾹 누르고 재활훈련에 매달렸습니다. 최근 주루 훈련까지 시작한 강정호 선수는 빠르면 4월에는 경기에 나설 수 있을 것 같다네요. 립서비스 같은 건 좀처럼 하지 않는 강정호 선수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벌써 복귀하는 날을 상상해요. 만원 관중 앞에서 타석에 서는 상상이요. 팬들의 박수를 받고 타석에 들어서면 초구에 홈런을 때리고 싶어요."

팬들을 사랑하는,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려는 강정호 선수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이 정도면 '강스타'가 될 자격이 충분하지 않나요?

플로리다=김선신 MBC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