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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성장 추구하는 시인의 길은 곧 군자의 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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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호 23면

일러스트 강일구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명석성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김수영의 데뷔작 ‘공자의 생활난’(1945) 마지막 대목이다. 시인은 여기서 자신이 걸어가야 할 험난한 여정의 동반자로 공자를 불러내고 있다. 시인-되기의 길이 군자-되기 혹은 성인-되기의 길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길은 사물을 “바로” 볼 때 완성된다.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던 공자처럼, 사물의 비밀을 알고 나면 삶을 마감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게다가 공자처럼 본다는 것은 어떻게 보는 것인가? 이런 물음에서부터 유가적 주체의 시선을, 나아가 유가적 사유의 논리를 생각해보자.


서양에서, 가령 플라톤주의 전통에서 본다는 것은 지성의 눈으로 불변의 형상을 본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주의 전통에서 본다는 것은 단순한 요소로 나누어 본다는 것이다. 세부가 판명해질 때까지 분석해 들어가 전체를 재구성할 방도를 찾는 것이 이론적 시선이다. 유가 전통에서 본다는 것은 『대학』에 나오는 격물(格物)의 개념으로 집약된다. 격(格)은 원래 똑바로 자란 높은 나무를 말한다. 이런 뜻이 발전하여 바르다, 곧바로 다다르다 같은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격물이란 사물의 이치에 똑바로 가닿는다는 것을 말한다. 김수영이 외치는 “바로 보마”의 정신은 이런 격물의 이념과 닿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가적 시선이 가닿는 사물의 이치는 플라톤적인 형상(본질)도, 데카르트적인 단순성도 아니다. 유가적 시선은 서양의 시선과 비교할 때 전혀 다른 인식론적 전제와 맞물려 있다.


유가 전통에서 바르다는 것은 무엇보다 때에 맞음을 말한다. 공자의 후예들에게 시간을 초월한 형상이나 배치는 없다. 올바르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중심에 들어맞는 것, 다시 말해서 시중(時中)을 의미한다. 중용의 시선은 상황마다 바뀌는 배치(이치) 속에 개체가 조화롭게 참여할 위치로 향한다. 전체는 활력적일수록 부분들의 배치가 유동적이다. 그런 만큼 개체가 그 안에서 담당할 몫이나 적절한 위상은 계속 달라진다. 이런 유가적 시선에 대해 밝음(“명석성”)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플라톤주의 전통에서 빛은 이상적인 형상(이데아)에서 온다. 그것은 영원성의 빛이다. 데카르트 전통에서 밝음은 이성의 빛에서 오고, 이성의 빛은 분석하는 힘에서 온다. 그러나 유가철학에서 밝음은 사물에서 온다. 정확히 말해서 사물과 사물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보조를 맞출 때 빛이 생겨난다. 『주역』(설괘전5)은 이것을 “불의 형상은 밝음에 있으니 밝다는 것은 온갖 사물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다(離也者明也, 萬物皆相見)”란 말로 풀이한다.


사물과 사물이 보조 맞출 때 빛 생겨나왜 바라보는가? 흐트러지는 대오를 다시 맞추기 위해서다. 빛은 사물들이 서로 눈짓하며 조화로운 관계(이치)를 형성해갈 때 발생한다. 여기서는 사람의 눈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유가적 의미의 “바로 보마”는 주체의 시선을 사물의 눈에 양도하고 상호 객체적 시선의 유희에 참여할 때 완성된다. 송나라의 유학자 소강절은 이것을 “사물의 눈으로 사물을 본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사물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본성이고, 나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정서다(以物觀物性也, 以我觀物情也). 본성은 공정해서 밝고 정서는 치우쳐서 어둡다(性公而明, 情偏而暗).”


이런 놀라운 문장은 오늘날 점점 일반화되어가는 사물인터넷(IoT)의 세계와 잘 맞아떨어진다. 기계가 갈수록 지능화되어 자기들끼리 반응하고 통제하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유가철학이 만물상견(萬物相見)의 질서를 가리키며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 유동성에 대한 감각이다. 사물들이 서로 바라보는 세계에서 일관성은 고정되어있지 않다. 균형의 중심은 계속 이동한다. 김수영은 ‘비’(1958)에서 이런 것을 “움직이는 비애”라 했다.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 여보/ 비는 움직임을 제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유가철학에서 사물들은 움직이는 휴식 속에서, 움직이는 휴식을 위해 서로에게 기대하고 감응하고 결의한다. 『중용』(14:5)은 그런 대대(對待)의 움직임을 반구(反求)라는 말로 표현한다. “활쏘기는 군자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때와 유사하다(射有似乎君子). 활을 쏘아서 정곡을 맞추지 못하면 돌이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失諸正鵠, 反求諸其身).” 오류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것은 자신이 책임을 떠맡는다든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입지를 찾되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찾는 노력이고, 계속 달라지는 배치 속에서 찾는 동작이다. 그것은 상호 주관적 정합성을 향해나가는 자발적 호응이다.


공자철학에서는 사물이든 사람이든 서로 바라보려 하고, 바라보는 가운데 서로 화답하려 한다. 반구의 운동은 어떤 화답의 충동을 전제하거나 요구한다. 김수영의 좋은 시들, 가령 ‘눈’(1956) ‘사랑의 변주곡’(1967) ‘먼 곳에서부터’(1961) ‘풀’(1968) 같은 시들에서는 이런 화답의 충동이 극적으로 장면화되고 있다. 전통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거대한 뿌리’(1964)도 반구의 유희를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앉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 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 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헤겔은 직립을 “인간의 절대적 자세”라 했다(『철학백과』 411절). 그러나 공자의 세계에서는 “앉는 법”에서조차 절대적인 것은 없다. 절대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의 태도에 따라 자신의 자세를 고쳐야 한다는 반구의 논리뿐이다. 반구의 논리를 따를 때는 자세만이 아니라 사물의 형상을 규정하는 테두리도,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도 절대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공자의 세계에서 사물은 물·바람·진흙과 같이 정해진 단위나 형태가 없다. 한 통의 물은 두 그릇으로 나눌 수도, 열 그릇으로 나눌 수도 있다. 모양도 마찬가지다. 물은 그것을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사물은 氣 흐름에서 생긴 잠정적 구성물유가철학에서 사물은 기(氣)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잠정적인 구성물에 불과하다. 그 구성물의 형상을 이루는 경계는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한 번 정해지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 듯한 견고성을 지니지 않는다. 경계가 유연하고 신축적이라는 것이 동아시아적 개체의 특징이다. 가령 신체는 테두리가 있되 표면에 분포된 수많은 기공들을 통해 안과 밖의 기(氣)가 바람처럼 드나들 수 있다. 온몸의 시학을 개진하는 김수영의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1968)의 부제가 “힘으로서의 시의 존재”라는 사실은 이 점과 닿아있다. 온몸의 시학은 시의 존재만이 아니라 사물 일반의 존재를 바람처럼 흐르는 어떤 힘에서 찾는다. 그러므로 김수영의 작품에서 바람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령 ‘채소밭 가에서’(1957)가 좋은 사례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돌아오는 채소밭 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


이 시에서 바람은 유혹과 위험, 생명과 죽음이라는 모순된 두 측면에서 경험되고 있다. 바람은 기운의 원천이자 소멸의 미궁이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채소를 키우고 꽃을 피어나게 한다. 그러나 이것들을 뒤흔들어 쇠락의 길로 몰고 가기도 한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바람을 마시며 살아가되 다시 바람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꽃이든 채소든 바람을 먹고 자라되 다시 바람의 먹이가 될 수 있다. 바람은 사물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경계를 이리저리 변형시키고 이동시킨다. 사물은 그 움직이는 경계를 지키기 위해 바람과 맞설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를 스스로 자극하는 가운데 자신의 테두리와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사물만이 아니라 사람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정체성의 테두리에 일정한 안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논어』(2:12)의 “군자는 정해진 그릇이 아니다(君子不器)”라는 말도 이런 배경에서 읽어야 한다. 사람은 하나의 고정된 형상에 갇혀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부단한 자기도야를 통해 계속 달라져야 한다. 이런 공자의 가르침에는 이미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경계선이 유연하며 게다가 잠정적이라는 전제가 들어있다. 인간의 형상은 끊임없이 재구성되어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유가적 도야의 이념에는 이런 재구성의 과제가 소홀히 될 때 자아의 정체성이 쉽사리 허물어질 수 있다는 불안이 숨어있다. 김수영의 ‘채소밭 가에서’는 이런 유가적 실존의 불안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정확히 자아의 경계에 대한 불안이다.

김수영이 ‘공자의 생활난’에서 외치는 “바로 보마”의 정신도 이 점에서부터 읽어야 한다. 그것은 시인의 사명이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을 얻는데 있다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다만 제대로 된 지식을 얻되 내면적 성숙을 위해 얻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시인의 길이 공자가 걸었던 군자의 길과 겹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인-되기의 길은 군자-되기의 길처럼 정신적 성장의 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수영은 ‘서시(序詩)’(1957)에서 시인이 따라야 할 도덕적 명령을 성장의 이념에서 찾고 있다.


“성장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 정리(整理)는/ 전란에 시달린 20세기 시인들이 하여놓은 일/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 그리고 교훈은 명령은/ 나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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