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입주민이 힘 모아야 아파트 관리비 도둑 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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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파트 관리비 도둑이 활개친다는 사실이 또다시 드러났다. 전국의 아파트 가운데 5분의 1가량은 관리비를 누가, 어떤 용도로, 어디다 썼는지 회계장부조차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와 관리소장이 관리비를 도둑질해도 주민은 깜깜이었다. 아파트 관리비는 배우 김부선씨가 ‘난방비 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감시의 사각지대였던 것이다.

어제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이 정부 합동으로 점검한 외부회계감사 결과를 보면 기가 막힌다. 충남의 한 아파트에선 최근 5년간 3억7000만원이 관리소장 개인계좌로 이체되는 등 20억원의 행방이 묘연하고, 경기도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공동 전기료를 과다하게 부과해 5000만원을 착복했다. 주민의 생활편의를 개선하고 관리비를 감시해야 할 입주자 대표는 44차례에 걸쳐 6000만원을 빼돌렸다. 관리소장과 주민대표가 결탁해 승강기 보수나 재활용수거업체 선정 때 부정을 저지르기도 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이런 악취 나는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민의 70%가 공동주택에서 살고 관리비 총액이 연 12조원이 넘는데도 민간 영역으로만 보고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탓이다. 다행인 것은 지난해 도입된 주택법 시행령에 따라 이번에 처음으로 ‘감시의 눈’이 공식 가동됐다는 점이다. 시행령은 300세대 이상 아파트는 매년 10월 31일까지 외부회계감사를 의무적으로 받게 돼 있다. 제도 시행으로 고질적 비리를 확인한 만큼 효율성을 더 높여야 한다. 단순 비용 등 숫자 맞추기 회계에 머물지 않도록 탄탄한 감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거짓 자료 제출 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도둑질한 관리비의 몇 십 배를 추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입주민의 관심과 참여다. 정부가 운영하는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매달 관리비 내역을 등록해 주민 스스로 용처를 감시하고, 단지별 관리비를 비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민자치를 이끄는 아파트 대표의 자질과 도덕성을 철저히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입주민이 힘을 모아야 관리비 도둑을 없앨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