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 반기문에게 "모르면 가만히 있지 왜…"

중앙일보

입력

“그것이 무슨 합의입니까.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간 합의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8일 오전(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남쪽 뉴욕시청 앞.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88)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날 이 할머니는 뉴욕시 정치권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함께 했다.

 할머니는 한일 정부간 합의를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할머니들이 25년간 일본 대사관 앞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본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양국 합의는)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위안부 강제 연행 부인 등 일본 지도자들의 계속되는 역사 왜곡에 대해서도 할머니는 “제가 피해를 당한 본인”이라며 “그런데도 일본은 거짓말만 하고 있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진실은 막을 수 없다”고도 말했다.

 뉴욕시의회의 로리 컴보 여성위원장은 “일본 정부는 이용수 할머니의 눈을 보면서, 끔찍한 잔혹 행위를 겪은 수많은 여성들의 눈과 영혼을 보면서,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진심을 담아,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시 의회는 공립학교에서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제대로 가르치도록 요구해나갈 방침이다.

 이 할머니는 이날 오후 유엔 본부를 찾아 열다섯 살에 일본군 부대에 끌려가 겪었던 참상을 기자단에게 증언했다.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다 죽어도 (일본군이 저지른)죄는 남는다”면서 “일본 총리가 한국의 일본 대사관 앞에 와서 무릎 꿇고 사죄하고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제사회가 일본군의 만행을 기억하고 후세에 가르쳐야만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인신매매를 막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여러분, 힘을 주십시오”라는 할머니의 간청에 회견장이 숙연해졌다.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일 정부간 합의를 환영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 할머니는 “반 총장에게 ‘모르면 가만히 있지, 왜 아는 척 하느냐’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